애초에 중세의 무사는 "궁마에 종사하는 자가 적에게 포로가 되는 것은, 반드시 치욕은 아니다", "운이 다해 수인(囚人)이 되는 것은 용사의 일상이다"라고 주장하고 있고, 잘 싸운 다음에 포로가 되는 것을 수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헤이케모노가타리』는 이치노타니 전투에서 헤이케의 사무라이 대장 다이라노 모리토시(平清盛)가 자신이 깔아 눕혔던 미나모토씨 측의 이노마타 노리쓰나(猪俣則綱)의 "보기 흉합니다. 항인의 목을 치는 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라는 군색한 말에 속아 목숨을 살려줬기 때문에, 그 틈을 타서 오히려 목이 잘렸다는 이야기를 싣고 있을 정도였다.
"항복 반분의 법"은, 남북조 내란 시대에 잘 보이는 관습법이다. 적이었던 자도 항복하면 아군의 군사력이 되고, 그래서 일단 적의 소령(所領, 영지)을 급여(給与)한다고 약속해도, 그 토지를 실제로 지배하고 있던 인물이 항복하면 간단히 몰수할 수 없어서 공약속(空約束)이 되는 일이 많았다.
중세에 오랜 세월 당지행을 행사했다는 사실은, 그의 강한 권리로서 존중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항복 반분의 법"이 성립한다. 즉, 그러한 경우에는 반분(3분의 일)을 당지행인에게, 반분을 새로운 급인(給人)에게 준다는 해결책이다.
출처: 다카하시 마사아키, 『사무라이의 역사』 p.143
흔히 일본 "무사도"하면 떠올리는, "주군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을 맹세하고, 주군을 배신하지 않으며, 포로가 되는 것을 죽음보다 치욕스럽게 여기는" 이미지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제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형성된 이미지임
실제로 무사들은 항복하는 것을 그다지 꺼려하지 않았고, 상황이 불리하면 배반도 서슴지 않는 등 굉장히 유연한 주군관계를 유지했음
"항복 반분의 법"이라는 항복한 자의 영지를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한 불문율까지 있었다는 점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음을 알 수 있음
도도 다카토라가 "무사란 주군을 7번 바꾸지 않는다면 무사라 할 수 없다"(武士たるもの、七度主君を変えねば武士とは言えぬ)라고 말한 것도 잘 알려진 이야기
즉, 일제가 주장했던 "무사도 정신으로 포로가 되지 않고 죽어라"는 정작 실제 중세 무사와는 괴리가 있었음
유럽에서 적 장교는 푸른피 취급해주던 그런 느낌인가
7번이나 주군을 바꾸다니 이건 완전 징베잖아
애초에 센고쿠 시대에도 진 쪽의 대장이랑 핵심 참모만 모가지 땄지 그 이외는 흡수하고 다녔음
중간이하 무사들 다죽이면 점령지 통치확립하는데만 한세월일듯.
잘 싸운 다음에(중요) - dc App
안 싸우고 저러면 ㄹㅇ 날먹충이지 ㅋㅋㅋㅋㅋ
삼국지(코에이)네 전부 참수하면 엔딩보는데 오래 걸리지
걍 샐러리맨이었잖음ㅋㅋ 아예 이직하는 부하한테 추천서 써줬더만
우리 모두 해병정신을 본받아 적극적으로 역돌격해야겠군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ㅋㅋ
할복충들은 알고보면 도박빚, 카드빚 때문이었던 것 ㅇㅇ
그래서 쇼군 토탈워에서는 돈만 많으면 적군 병력 매수하는게 가능했던거구나 ㅋㅋ - dc App
정확히는 전쟁 없는 에도 막븐 시대를 거치면서 무사도가 하가쿠레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교조적으로 변질되었고, 일제가 들어선 후 그 변질된 교조적 무사도를 국가이념으로 채택했다고 이해할 수 있음
일본에서도 전국시대 파본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알고있는 사실인데 사실대로 말하면 넷우익들이 발광함 ㅋㅋ
도도 다카도라 저 얘긴 사실 "7번씩이나 주인 바꿔도 상관없다노"보단 "7번씩이나 주군 바꿔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실력과 처세술을 갖추지 못하면 무사라고 할 수 없다"에 가까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