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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6년, 튜튼 기사단(Teutonic Order)의  기사단장 디트리히 폰 알텐베르크(Dietrich von Altenburg) 신성 로마제국과 브란덴부르크,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에서 지원 받은 병력 6,000명을 이끌고 리투아니아 공국(Lietuva)의 필레나이(Pilėnai)성을 공격했다. 리투아니아 공국은 아직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교도 국가였기 때문에 신을 내세운 십자군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필레나이의 영주 마기리스 공작(Duke Margiris)은 휘하 병력을 이끌고 독일인들에게 저항했다. 하지만 리투아니아인들의 피해가 누적되고 독일인들이 목재 방벽으로 이뤄진 필레나이 성에 화공을 가하자 성은 더 이상 버틸 가망이 없었다.



그러자 리투아니아인들은 먼저 불 속에 자신들의 모든 재산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생존자들은 성 광장 한가운데에 모였다. 먼저 남성들이 여성, 어린이, 부상병들을 먼저 목 졸라 죽였다. 그 다음에는 남성들 차례였다. 우상을 숭배하는 늙은 노파 한명이 남아 도끼로 남자들의 목을 대신 쳤다. 마지막 한명까지 다 치자, 노파 역시 도끼날로 자살했다.


마기리스 공작은 지하감옥으로 내려가 자신의 아내를 직접 칼로 찔러 죽였다. 그리고 그 칼로 자신의 배를 찔러 내장이 흘러나오도록 하여 피를 흘리며 불타는 성에서 죽어갔다.



독일인들이 마침내 성에 진입했을 때는 모든게 타버린 뒤였다. 노획할만한 전리품이라고는 단 한개도 없었다. 유일하게 가지고 갈 거라고는 성에서 기르던 가축들 뿐이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가축들을 죽이지 않고 풀어준 상태였다. 성채가 완전히 다 타버려서 그들의 깃발을 드높일 곳 조차 없었다. 


튜튼 기사단은 리투아니아인들의 이런 저항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함께 종군한 서기들은 이를 '이교도들의 야만적 행위'라고 기록했다. 독일인들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채 그냥 철수했다. 그나마 자신들의 업적을 치장하기 위해 마기리스 공작을 리투아니아의 '왕'으로 승격시켜 기록했다.



이후로도 독일 기사단의 동방 십자군 원정은 계속 이어졌으나, 해가 지날수록 리투아니아인들의 저항은 더 거세져가기만 할 분이었다. 유럽 최후의 이교도로 남아있던 리투아니아는 독일인들을 물리치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 후 폴란드와 혼인동맹을 맺는 초강수를 두었고, 1410년 그룬발트에서 마침내 튜튼 기사단을 전멸 시킴으로써 멸망의 문턱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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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리투아니아는 이제 기독교 국가이지만, 필레나이의 전설은 아직까지도 리투아니아에서 민족저항 정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리투아니아인들의 독일인들에 대한 경계심은 DNA에 각인된 수준이었다. 리투아니아의 민속 설화 속에서 독일 기사단은 용으로 변신하여 불을 뿜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로 묘사된다.  비록 필레나이 성채가 다 타서 사라진 탓 정확한 위치는 아직까지도 불분명하나, 독일인들이 남겨놓은 여러 라틴어 기록이 그것을 보충해주고 있다. 오늘날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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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리투아니아 육군에는 마기리스 공작의 이름을 딴 보병대대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