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외무부문서』 9권(1899~1901),【52】청국 폭동 및 대한제국 내부 상황보고, 1900년 7월 12일


서울, 1900년 7월 12일


청국·대한제국 국경 지역의 폭동, 평화로운 대한제국


장관님,


만주에서 활동하는 개신교 선교사 2명이 며칠 전 국경 지대에 있는 의천宜川 Eui-tjyon이라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서울에 전보를 보내 만주 전역에서 폭동이 발생했고 대한제국의 국경까지 번졌다고 전했습니다. 의천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청국의 안동An-tong이라는 도시는 가톨릭 선교단을 없애겠다고 위협하는 ‘의화단’이 휩쓸고 있습니다.


이 소식은 궁을 경계시켰습니다. 궁은 이미 청국 폭도들이 대한제국 영토에 침입해서 폭동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황제는 애석하게도 서울 근위대를 국경으로 파견할 수 없습니다. 서울 근위대는 꽤 훈련이 잘된 군대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황제는 개인 경호를 위해 근위대를 곁에 두길 원합니다. 평안平安 Hpyeng-an 지방에서 좀 훈련을 받은 병사들에게 국경 수비를 맡겼지만, 이 임무 완수를 이들에게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최근 대한제국의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만족스럽습니다. 전역이 평안해서 대한제국은 현재 청국을 휩쓸고 있는 심각한 위기의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 기대됩니다.


G. 르페브르



주한일본공사관기록 14권

(61) 機密漏洩嫌疑(기밀누설혐의)에 관한 情報(정보)

機密第74號

韓國 문제에 관한 일로 교섭한 소식이 當館에서 누설된 것 같으니 충분한 주의하라고 지난달 25일발 貴電 제64호로 訓逹하셨습니다. 本使는 이런 소식을 다른 데에 누설한 일이 없으므로 몹시 의외의 느낌을 받아 즉시 이곳 전신국에 신문 통신은 물론 다른 전보 발신에 대해서까지도 자세한 조사를 마쳤습니다. 그렇지만 결코 본건과 관계가 있는 통신은 없었으므로 즉시 다음날 26일 제172호 전신으로 그 뜻을 回申한 끝에 근래 도착한 우리나라 신문을 조사했던바 ≪中外商業新報(중외상업신보)≫에 다음 전보가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즉,


7월 20일 同新聞

義和團(의화단)이 드디어 한국에 들어옴(京城(경성)18일 오후 6시 20분 特報)

의화단이 드디어 한국 경내에 들어와 平壤 지방의 인심이 흉흉했다. 동 정부는 이 보도에 접하자 그 방어, 진무는 도저히 한국 군대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이라 하여 美國의 병력을 빌려서 이를 맡길 內議가 있다고 전한다.

한국 주재 列國 公使의 態度(凍傷)

한국이 미국의 병력을 빌려 의화단의 광폭함을 진무하려고 하는 內議에 대해서는 한국 주재 열국 공사들은 아직 아무런 의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7월 21일 同新聞

한국 주재 일본 공사의 의견(京城 19일 오후 3시 2분 特報)

한국 조정이 의화단 방어를 위하여 미국 병정을 빌리려고 하는 일에 대해 列國 公使 중에 다소 의견을 표시하는 자가 있었다. 일본 공사 林權助씨는 먼저 러시아와 의논한 다음 결정하는 것이 합당하는 뜻을 보였다고 들었다.


이 중에 ‘러시아와 의논한 다음 후 결정’ 운운하는 소식은 다소 근거가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동 신문이 24일의 사설에서 상세히 논한 것을 보아도 이 점에 무게를 둔 것이 명확하고, 동시에 또 이 소식이 전혀 同社가 날조한 것이 아님을 推斷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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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프랑스 공사는 의주가 위험한데도 고종은 근위대를 안보낼거라고 보고하고, 일본 신문은 첩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 조정이 미국군 파병을 요청했다고 기사 써재끼는 마당에


국이 제대로 된 파트너로 대우받았을지 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