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가 총 3번 있었음

처음은 아직 조선이던 시절인 1894~95년인데 국가사정이 개판이라 현실성 없었음.

둘째는 1901년인데 좀 자리잡고서 씁 징병 해볼까 했더니 양반 출신들은 신분질서 붕괴할까봐, 농민들은 농삿일에 차질 생기니까 반대해서 파토났음

세번째는 1903년인데, 일본 군제에서 착안해서 계획안 마련중이었고 고종도 빨리 초안 마련해서 달라고 원수부 독촉하고 그랬는데

응 어림도 없지 1904년초에 러일전 터지며 나가리



출처는 서인한의 "대한제국의 군사제도"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