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퇴위 사태 때 시위 1연대 3대대장 대리로 복무하면서 양위반대파로 활동했던 그 양반 ㅇㅇ 공식적으로는 독립운동가가 아님.

우선 군대해산 1년 후인 1908년 당시에는 북청수비대 순사대장으로 정미의병 토벌에 가담하면서 홍범도랑 충돌한 적은 있음.

한겨레나 홍범도 평전에서는 임재덕을 '악독한 일진회 친일파'로 묘사하며 홍범도의 아내를 고문치사했다가 홍범도에게 잡혀죽었다는 식으로 설명하던데

1차사료들 찾아보니 이거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음. 황성신문 등 다른 기사에 따르면 임재덕은 이후에도 멀쩡히 살아서 1909년에 참령 진급했음.

그리고 임재덕은 고종퇴위반대운동 시기부터 휘하장병들과 함께 이완용 내각과 그 따까리들인 일진회와는 척을 진 입장이었음.

1908년에는 의병들을 설득해 무장해제시키는 과정에서 일진회새끼들은 매국노 도적들이라고 연설해서 의병들과 대한협회 회원들이 감동먹기도 했음

이렇듯 의병진압할때도 딱히 유혈 강제진압을 시도했다기보단 연설과 설득 위주로 무장해제시킴.

실제로 조선폭도토벌지 보니까 홍범도 의진과 충돌했을 때도 임재덕이 먼저 선무공작에 나섰다가 실패하니까 그제서야 일본군이 투입됐음.

그래서 홍범도 아내를 고문해 죽인 건 임재덕이 아니라 일본군일 공산이 큼.

1909년에는 신규식이나 윤치성 같은 퇴역군인들이 돈 모아서 민족자본 제조업 회사 차리려고 만든 대한공업회에서 총무직을 맡았었음.

마지막으로 한민족독립운동사에서는 일본 연구자 사사키 하루타카 교수와 야마모토 시치헤이 교수의 저서를 인용해서 임재덕이 1910년대에 결국 간도로 건너가 무장독립운동에 몸담았다고 설명함

다만 이건 교차검증 한번 해봐야될지도 모르겠음.



※ 참고: 한자까지 똑같은 동명의 1876년생 독립운동가가 있긴 한데 이 사람은 본문의 임재덕이랑 전혀 다른 사람임.






요약하자면
1. 정미의병 토벌에 가담하긴 했어도 친일부역자라고 보기는 상당히 힘듦.

2. 홍범도 아내를 죽이고 홍범도에게 죽었다는 내용은 개구라일 가능성 존나 높음

3. 이후 행적으로 미루어 보면 애국계몽운동은 확실히 했고, 무장투쟁에 가담했을 가능성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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