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통감부 내부 문서에서 얘네를 '평양연대'라 부르길래 ??? 싶었단말임? 시위대는 중앙군인데 뭔 ㅅㅂ 평양이여 했음
근데 더 찾아보니깐 2연대 전체가 원래 시위대가 아니라 진위대 출신들이 맞나봄
군부에서 징상 1·2·3대대의 병정을 각각 200명씩 감축하여 북청대를 설치하기로 계획하였는데, 징상 3대대 참령 홍창걸 씨가 군부에 청의하기를, “600명의 경비를 지출하면 800명을 보존할 수 있으니, 3대대 병정은 감액하지 말라.” 하였으므로, 1·2대대 병정만 각각 200명씩 감축하게 되었다고 한다.
출전: "費減兵存", 대한매일신보(국한문), 1907년 4월 14일
보면 알겠지만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이들을 '징상대'라고 칭하는데 이건 지방 진위대 중에 상경해서 서울주둔하던 부대들을 말함.
시위대는 러일전 전까지 원래 2개 연대였는데 1905년에 친위대랑 진위대 연대들 폐지될 때 시위 2연대도 같이 폐지됐음.
그러다 해산 몇 달 전인 1907년 4월 2차군축때 시위혼성여단 편제가 등장하면서 시위 2연대가 느닷없이 풀편제 채워서 부활함.
정황상 신병 받아서 만든건 아닐거라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징상대를 걍 시위대에 넣어버렸다고 가정하면 2연대의 급작스런 예토전생이 납득감
잡보(雜報) ― 진위대(鎭衛隊)의 배치와 관련하여, 군부대신 권중현(權重顯) 씨와 고문관 노즈(野津) 씨가 진위군제(鎭衛軍制) 이정(釐正, 개편) 안건을 각 부대 800명으로 편성하여 정부 회의에 제출한 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연대: 경기도 수원 300명, 강화 200명, 개성 50명, 북한 25명, 안성 25명, 징상병(徵上兵) 200명.
제2연대: 충청도 청주 300명, 공주 100명, 황간 50명, 시천 50명, 충주 100명, 징상병 200명.
제3연대: 전라도 광주 100명, 전주 100명, 남원 50명, 강진 50명, 징상병 500명.
제4연대: 경상도 대구 300명, 진남(鎭南) 200명, 진주 100명, 울산 50명, 경주 50명, 안동 50명, 상주 50명.
제5연대: 황해도 황주 200명, 해주 100명, 징상병 500명.
제6연대: 평안도 평양 200명, 의주 50명, 강계 50명, 징상병 500명.
제7연대: 강원도 원주 200명, 고성 100명, 여주 50명, 춘천 50명, 징상병 400명.
제8연대: 함경도 북청대(北靑隊)이니, 아직은 설치하지 않는다.
출전: "日兵站照會", 황성신문, 1905년 4월 22일
1905년 황성신문 기사를 보아하니 1차군축 때 진위연대들을 해산시켜 대대로 개편하고 남는 병력들을 징상병으로 올려보냈다고 함.
정황상 이들 중 1907년까지 징상대로 서울에 머무르던 병력이 시위 2연대를 구성하지 않았을까 싶다
쨌든 더 찾아보니 7월 19일 밤에 경운궁 들박하려던 3대대는 일본 말대로 평양병들 맞고, 1대대는 수원, 2대대는 광주랑 원주병들인듯
주요 지휘관들이 1906년쯤에 평양진위대, 수원진위대, 광주진위대, 원주진위대에 간부로 있던 사람들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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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이다! 진위대 진위대!
평양빙상병대는 유명하지
오타 징상
딱 왕조국가시대 번상병 느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