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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gall.dcinside.com/m/military_anime/195141


 옛날에 군갤 완장하던 사람이 썼던 글이 있다. 처음 디시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피터 홉커크가 쓴 '그레이트 게임'을 읽고 쓴 글이었다고. 그 글을 보게 되면서 갤질을 하게 되었다고.


 그 글은 현재 더이상 찾아볼 수 없지만, 그레이트 게임과 그 주된 자연환경이던 타클라마칸 사막을 연결지으며 시작되었다. 그곳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고, 어떤 면에서는 게임과 같은 중독성을 가져 결국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며, 그 게임의 무서움을 주로 언급하였다.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그야말로 타클라마칸과 같은 게임을 서술하였다. 어찌보면, 군갤 완장하시던 분도 타클라마칸 게임에 빠진 것이다.



 Great Game! 러디어드 키플링에 의해 불멸의 단어가 된 이 용어는 생각 이상으로 특이한 표현이다.


 그레이트 게임은 러시아 제국과 대영제국이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벌인 대결 구도를 의미한다. 18세기 러시아의 확장과 영국의 인도 확장 이후, 양측은 동맹을 맺기도 하지만 군사적 충돌과 갈등을 겪기도 했고, 제국주의적 확장을 이루어나가고 있었다. 영국은 러시아가 계속해서 확장해가다 인도를 위협할 수 있다 믿었고, 러시아는 지속적인 확장에 영국이 방해된다 믿었다. 그러나 정작 러시아 제국의 심장부와 영국령 인도 사이에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험하고도 미궁에 빠진 지역들이 있었고, 양국은 이 갈등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미궁 속으로 탐사하러 나섰다.


 영국은 상인과 탐험가로 위장한 스파이들이 앞장서 중앙아시아를 탐사했고, 러시아는 혈기 넘치는 현장 지휘관들이 앞장서 중앙아시아를 재패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고생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히바 칸국에서 전원 처형당한 러시아 장병들, 카불에서 한 명 밖에 살아 돌아오지 못한 영국 장병들, 테헤란에서 난도질 당한 외교관과, 계곡 어딘가에서 처형당한 게임의 선도자.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았다 믿었던 세계를 탐험하고 정복하고, 피를 흘리며 나섰다. 러시아에서는 Турниры теней, '그림자의 토너먼트'로 불리는 이 대결은 한 세기가 넘게 진행되어 1905년 러일전쟁을 끝으로 사실상 종결되었다. 그레이트 게임은 영국의 거문도 점령,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 등으로도 구한말 한반도 정세에도 영향을 주었으니, 보통 사건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게임, 토너먼트. 둘다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벌이는 일종의 스포츠이자 유희다. War이 아니란 말이다. 정말 전쟁이 아니었을까? 택도 없는 소리. 그럼 중앙아시아의 칸국들과 인도의 소왕국,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체르케스 등에서 흐른 피는 블러디 메리였다는 말인가? 심지어는 영국과 러시아가 정면으로 충돌한 경우도 있었다. 크림 전쟁도 그레이트 게임의 기간 동안 벌어진 사건이었고 수십 만 명의 피가 흘렀다. 심지어 후대의 미소 대결 구도도 양국간 정면 충돌이 없었음에도 'Cold War', 냉전이라 불리지 않는가? 그럼에도 이들에게는 그레이트 게임이 전쟁이 아닌 말 그대로 '엄청난 놀이'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래서 나는 항상 그레이트 게임과 그 시대에 매료되어 왔었고, 그 공간이 궁금하였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를 빠져들게 했었다면, 나 역시 피터 홉커크의 '그레이트 게임'에 빠져들었고, 그 배경이던 그레이트 게임과 중앙아시아, 그 세계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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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홉커크는 영국인으로, 군인과 언론인, 기자, 역사가를 했었고 쿠바와 중동에서는 비밀경찰 감옥에 들어가고 테러리스트에 납치되었던 적도 있는 비범한 인물이다. 그의 저서는 한국에서 '그레이트 게임'과 '실크로드의 악마'로 읽을 수 있지만, 그 뿐만 아니라 'Trespassers on the Roof of the World'나 'Quest for Kim'도 원서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저서들이다.


 피터 홉커크의 글을 보면 영국인이다보니, 영국인의 사건이다보니 다소 영국과 제국주의 편향적인 면모도 있지만 그의 발자취를 보면 마냥 편향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만약 그의 글이 편향적이었다면 한국에 번역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이었던 무함마드 나지불라가 탈레반에게 처형당하기 전에도 이 책을 파슈툰어로 번역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았고, 두껍지만 읽을 수 있고, 더 널리 읽힐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즉, 그 험난한 세계는 무언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료함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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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몇 년 간, 다른 이들에게 역사, 인문학, 고전 등을 설파할 기회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전, 역사, 용어, 상징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전달할 수 있었고, 그걸 통해 숨겨져 있는 의미들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잘 되었느냐 묻는다면,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그럼에도 몇 년 간 순탄하게 진행되어 왔었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는 건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느껴보는 것이다. 오귀스트 로댕의 '지옥의 문'과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육체 노동자의 몸을 한 상태로 아주 어려운 자세로(직접 자세를 취해보아라) 지옥의 문 바로 위에서, 한가운데에서 지옥을 내려다보며 고민을 한다. 과거에는 지옥은 가방끈이 긴 사람들만이 알 수 있도록 추상적이었고, 종교적으로 본인이 무조건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이제는 누구든지 알고 떠올릴 수 있고, 무조건 감내할 것이 아닌 사람들마다 생각할만한 것이 된 것이다. 이제는 나태했으니 지옥에서 고통받으라 했는데 거기서도 나태할 방법을 찾는 것이 인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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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인간은 직접 대상을 목도한 상태에서 생각하고 느껴봄으로써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고,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고, 이를 통해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가능해지고, 더 깊은 울림과 목표를 보여줄 수 있게 된다. 그저 느끼는 것은 '테넷' 만으로도 족하다. 느끼는 걸 넘어서 그 세계가 어떠한지 직접 보고 판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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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은 키르기즈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를 시작해서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을 거쳐 중앙아시아의 칸국들의 흔적을 지나갈 것이다. 악타우에서 러시아 옆에서 홀로서기를 하는 카자흐스탄을 만날 것이고, 카라바흐와 카프카스의 흔적들을 만날 것이다. 키프로스의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른 뒤 히타이트의 유적과 갈리폴리의 수많은 하얀 비석, 사라예보의 총성과 티토의 영묘를 만난다. 아우슈비츠와 자유 노조의 그림자, 수왈키 회랑 너머의 발트 3국까지 관통하는 거대한 일정이 될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지금까지 쌓아온 인문적 소양, 역사적 소양, 군사적 소양을 전부 갈아넣는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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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여정을 '나홀로 세계대전'이라 부르고자 한다. 지난 시간 동안 만나왔던 경험들, 지식, 사유들을 가지고 가장 생생했던 곳들을 직접 마주할 것이다. 영국과 러시아도 이곳들에서 토너먼트를, 게임을 했다면 나는 그랑프리를 할 것이다. 마침 바쿠에서는 F1 경기도 열리지 않았던가. 분명 무엇보다도 길고도 흥미로운 레이스가 될 것이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킴'에서 주인공 킴은 '세상 모든 이의 어린 친구'라 불린다. 어린 친구도 자신만의 길과 강을 개척하는데, 내 길이라고 못할 것 있나. 곧 가장 재밌는 그랑프리를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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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부탁드립니다. 여행지에서 계속 쓰긴 하겠지만, 실제로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간혈적으로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해발고도 4천 미터나 카자흐스탄 사막에서는 와이파이 안 터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