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말 NSC 37/9 수정본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대만에 대한 군사적 중요성은 낮게 평가하고 자국 안보상 중국 내전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 우세했다. 이는 장제스 정부에 실망한 미국이 오히려 중국 전역을 장악한 중국공산당을 활용해 소련에 맞서게 한다는 아시아의 ‘티토주의화’ 전략과 쐐기 정책 등을 고려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NSC 37 초안에서는 대만에 대한 적절한 외교와 경제적 방법이 취해지면 공산주의자들의 지배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도 평가하고 있다. 1949년 8월 22일 국방장관에 의해 제출된 NSC 37/7 수정본과 10월 6일 국무장관이 제출한 37/8 수정본에서는 미국의 군사적 점령, 지배가 없다면 대만은 ‘1950년 안에 중국공산당에 의해 지배될 것이다’라는 일치된 평가를 내렸으며, 특히 국방부는 “대만과 펑후 제도가 미국에 있어 전쟁이 발발할 경우 점령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만큼 군사적 중요성을 가지는 지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도 평했다.


 1949년 말부터 대만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맥아더와 공화당원들의 영향으로 미국 내에서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 평가에 대한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그 결과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1949년 12월 27일 제시된 NSC 37/9에서는 군사적 방법이 대만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고 평가하며, 대만에 대한 군사원조 계획이 미국의 안보에 유익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또한 극동군 사령관에게 미 제7함대를 이용하여 대만에 대한 중공의 침공을 저지할 수 있는 군사적 원조의 타당성을 조사하도록 지시하는 등 기존 태도에서 방향을 다소 선회했다. 1949년 말부터 맥아더는 대만이 ‘해안에 위치한 섬 방어기지로서’ 중요함을 강조하기 시작했으며, “공산주의자들이 대만을 장악하면 태평양에서 미국의 안보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라며, 공산주의자들이 섬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트루먼 대통령은 대만을 ‘중립’지역으로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맥아더는 대만이 중국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간다면 극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방어지역들을 결정적으로 잃어버릴 것으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대만을 미국의 ‘신탁통치’ 또는 일본에 돌려주자고 제안했다. 공화당의 스미스 상원의원의 경우, 대만은 아직 일본영토이기 때문에 미국은 대만에서 보호국 정치를 시행할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공화당의 놀랜드나 태프트 상원의원은 “미 해군이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배치되어야 한다”며 대만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지원을 통해 보호할 것을 주장했다.



출처


대만해협 위기와 주요국의 대응 -미국·일본을 중심으로, 정현욱 외 2명 저, 2022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19~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