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포 이후로 피해를 회피하는 극단적으로 소극적인 군사행동 때문에


해안가의 왜성 건축을 저지하지 못하고 왜군의 요새화를 통한 장기전에 기여한 것에 조선 조정이 분노했기 때문이라는데



원균이 병신이긴 하지만 왜성 알박이랑 그 피해는 이순신도 책임이 없지 않다는 논리였는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음



근거로 부산포 해전도 녹도만호 정운이 거의 억지로 끌고 나간 상황이었다함



일리 있는 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