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대안으로서의 남북한 핵균형 전략
비판자들은 한국에 핵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한반도 비핵화는 물건너간다고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가 진리다. 일찌기 예수는 “다른 사람의 사랑을 기대하기 전에 네가 먼저 사랑을 베풀라”고 설파했지만 현대 국제정치에서 ‘예수식 접근’으로 성공한 군비통제는 없다. 즉 제로섬 경쟁관계에 있는 두 나라 중 일방이 선의의 설득으로 상대방이 가진 비대칭적·일방적 무력수단을 내려놓게 한 사례는 없다. 하지만 정반대로 ‘레이건식 접근,’ 즉 상응하는 대응조치로 상대의 비대칭 수단을 무력화시키고 오히려 유지하는데 부담을 느끼도록 만들어줌으로써 상대를 협상으로 나오게 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1980년대 초반 소련이 미국의 제안을 무시하고 공격용 핵미사일들을 개발을 계속하자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의 모든 형태의 핵공격을 우주와 공중 그리고 해상과 지상에서 막아내는 ‘전략핵방어구상(SDI)’을 추진했다. 소련은 자신들의 핵무기가 무력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공격무기 개발에 나섰지만 결국 소련 경제의 파탄을 가져와 전략핵 감축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1987년 중거리핵폐기조약(INFT), 1991년과 1993년의 전략핵감축조약(STARTⅠ,Ⅱ)은 그렇게 체결되었다. 대기권핵실험금지조약(PTBT, 1963), 우주에서의 핵무기 배치를 금지한 외계조약(Out Space Treaty, 1967), 핵실험 규모를 150kt 이하로 제한한 핵실험규모제한조약(TTBT, 1974) 등 그 이전의 수많은 핵군비통제 조약들도 이대로 가면 모두에게 손해라는 공동의식 하에서 성사되었다. 요컨대,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조금만 멀리 보면 집요한 핵보유 동기를 가진 북한을 비핵화 협상으로 끌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저들의 핵무기를 ‘보검’이 아닌 ‘쓸모 없이 양식만 축내는 코끼리(white elephant)’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중국에게 북핵을 무한정 두둔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가르쳐 주는 방법이기도 한다.
북한의 계속되는 핵무력 고도화에 대해 무작정 ‘대화와 협상’만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확전의 위헙성을 지닌 군사옵션도 아닌 제3의 대안으로는 미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거나 한국과 일본에게 자위적 핵무장에 나서게 함으로써 핵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북한에게 있어 핵무기는 정권과 체제를 수호하는 ‘보물단지’에서 북핵을 오히려 정권과 체제를 위협하고 경제에 부담을 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며, 북한이 지금까지 누려온 대남 비대칭적 전략우위도 소멸될 것이어서 대남 또는 대일 핵협박도 먹히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이 동맹국들의 핵개발을 만류하는 대신 핵우산을 제공해주는 현재의 반확산에 기반한(nonproliferation- based) 동맹전략을 지속하는 상황에서는 한국이나 일본이 독자 핵무장을 결행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하지만, 중국이 북핵을 사실상 묵인하면서 러시아 및 북한과 더불어 미국의 영향력을 잠식하는 지전략을 펼치고 있음을 유의하여 미국이 동맹국의 핵능력을 함양함으로써 팽창주의적 중국몽을 견제하는 전략으로 전환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핵무장 행보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자체로도 중국의 자세를 변화시키는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한국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핵균형 전략이 북핵에 대한 군사행동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방안이자 미국의 장기적 전략이익에도 부응하는 방안임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여기에 비해, 전술핵을 재반입하는 문제는, 다양한 장단점과 찬반 논의에도 불구하고, 일단 동맹의 틀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동맹을 유지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이 것 역시 현실성에 있어 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는 선택이지만, 이제는 일단 한미 간의 주요 전략 아젠다로 부상시킬 필요가 있다. 전술핵 재배치는 동북아의 핵지형을 바꾸는 것이므로 한미 양국이 이를 논의하는 것만으로도 중국과 북한의 자세변화를 촉구하는 지렛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출처 : 북핵을 바라보며 회상한다, 김태우 저, 2018년, 기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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