弩張遲,臨敵不過一二發,所以戰陣不便於弩。非弩不利於戰,而將不明於弩也。不可雜於短兵,當別為隊,攢箭注射,則前無立兵,對無橫陣。復以陣中張,陣外射,番次輪迴,張而復出,射而復入,則弩不絕聲,敵無薄我。夫置弩必處其高,爭山奪水,守隘塞口,破驍陷果,非弩不剋。
쇠뇌(弩)는 당기는 것이 더뎌 적과 대치 중에 1-2발 이상 발사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투 상황에서 진을 짤 때는 쇠뇌가 불편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쇠뇌가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휘관이 쇠뇌의 활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쇠뇌는 단병(短兵)와 혼합하여 사용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별도의 부대로 편성해야 한다. 화살을 모아 집중해 사격하면, 적군이 앞에서 늘어놓을 진형이 없다. 또한, 진 안에서 장전하고 진 밖에서 사격하며, 교대로 나갔다가 돌아오며 반복하면, 노의 소리가 끊이지 않아 적군이 감히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노를 배치할 때는 반드시 높은 곳에 두어야 한다. 산을 차지하고 강을 지키며, 험한 요새와 좁은 통로를 방어하거나, 용맹한 적군을 무찌르는 데는 노가 필수적이다. ㅡ 통전 권149 병2
布陣訖,鼓音發,其弩手去賊一百五十步即發箭,弓手去賊六十步即發箭。若賊至二十步內,即射手、弩手俱捨弓弩,令駐隊人收。其弓拏手先絡膊,將刀棒自隨,即與戰鋒隊齊入奮擊。
진을 모두 펼치고 북이 울리면, 쇠뇌수(弩手)는 적과의 거리가 150보(步)가 되면 발사하고, 궁수(弓手)는 60보가 되면 활을 쏜다. 만약 적이 20보 안으로 접근하면, 궁수와 쇠뇌수는 모두 활과 쇠뇌를 버리고 머무르는 병사들이 이를 수습하게 한다. 궁수와 쇠뇌수는 미리 팔을 걷어붙이고 칼과 몽둥이를 휴대하고 있다가, 전봉대(戰鋒隊)와 함께 일제히 돌격하여 적을 친다. ㅡ 통전 권157 병10
활조차도 거리에 들어오면 군령에 따라 일제사격하는 건 동일하고 발사속도가 높으니 지속적으로 사격하는 것 뿐이고 쇠뇌는 힘드니까 교대로 순차사격하는 방식
발사속도가 느리지만 위력은 강한 투사무기는 기존에도 존재해서 똑같은 활용법이 이미 다 적혀있는데 갑자기 화기 등장했다고 특별한 운용법인 것처럼 도달했다 도달하지 못했다할 이유가 있나
且凡戰勝負, 皆決於短兵相接, 故射者、槍者、銃者、騎者, 皆帶劍, 旣帶其劍, 而不知其術, 可乎?
그리고 어느 전투이건 간에 승부는 모두 단병(短兵)으로 육박전을 벌이는 데에서 결판이 납니다. 그래서 사자(射者)·창자(槍者)·총자(銃者)·기자(騎者)가 모두 칼을 차고 있는데, 칼을 차고서도 그 기술을 모른다면 되겠습니까. ㅡ 인조실록 19권, 인조 6년 9월 29일 병술 3번째 기사 (1629)
用劍, 爲短兵之要。 日本、浙江, 以此爲天下强兵。
칼을 잘 쓰는 것이 단병전(短兵戰)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일본과 절강(浙江)은 이것으로써 천하의 강병(强兵)을 만들었습니다. ㅡ 인조실록 22권, 인조 8년 1월 6일 병술 1번째 기사 (1630)
조선이 냉병기 몰라서 안 쓴 게 아니라 단기적으로 양성할 기간나 재정이 안되니까 그런 거지
원거리 병과는 대부분이 개인 수련이 가능한 형태이고 그 중에서 난이도 높은 활조차도 그 수준 자체를 평가하고 수치화하기 편함
백년전쟁도 장기화되니 영국 장궁병 숫자는 증가하는데 지킬 무장병들은 적어지니 말뚝같은 장애물에 의존하다가 장궁병들 손실 크게 나는 경우도 생긴 거랑 같음
조선 상황에서 가장 숙련도 높이기 쉬운 병과가 총병이고 그래서 총병 중심으로 양성
부역/징발, 봉건/봉직 체계에서 임노동 형태로의 변화는 화약혁명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그 변화도 매우 긴 기간에 걸쳐 일어남
예전에는 기술 혁명같은 몇 가지의 분기점으로 혁명을 규정하려 했다면 요즘은 수세기에 걸친 전체적인 변화를 혁명이라는 단어로 묶으려는 거 같은데 변화는 맞아도 그게 '혁명'이라는 단어에 부합하는 건지는 모르겠네
화기/총기 혁명(Gunpowder Revolution)을 제외하면 그걸 혁명이라 불러야 하나
질소고정법-화약대량생산 미만잡이지ㅋㅋ
기관총
등자 - dc App
등자가 제일 먼저 격파된 이론 아닌가
@그냥인간 아 그래? - dc App
환국의 여고생 사무라이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