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로스 블라자키스(Σπύρος Μπλαζάκης, 1916-1996)
요르고스 초바나키스(Γιώργος Τσομπανάκης, 1919-1996)
그리스 본토(1946-1949)와는 달리 다소 짧은 기간(1947-1948)동안 지속된 크레타에서의 내전은 1948년 6월 사마리아 협곡에서 그리스 민주군이 정부군에 의해 큰 타격을 입으며 사실상 종식되었다. 헌병대, 정부군, 우익민병대가 협곡을 포위했으며 군함까지 동원되었다. 꽤 많은 수의 파르티잔이 포위망을 탈출하는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조직적인 저항동력을 상실하였다.
뒤이어 1949년 그라모스 전투가 정부군의 승리로 끝나고 10월 16일에는 그리스 공산당이 저항 중단을 선언하며 본토에서의 내전도 막을 내리게 된다.
내전이 끝난 후 많은 그리스의 공산주의자들은 알바니아 등 타국으로 망명을 하였으나 일부는 그리스에 남았다.
아포코로노스 출신인 스피로스 블라자키스와 요르고스 초바나키스는 둘다 그리스-이탈리아 전쟁에 참전했으며 그리스가 추축국에 점령되자 EAM(민족해방전선) 소속으로 처음 입산하여 나치에 대항하였다.
추축국이 패배한 후 내전이 일어나자 이번에는 그리스 공산당 산하의 그리스 민주군 소속으로 참전하였다.
이들은 내전이 끝난 이후에도 투항하지 않고 정부군의 추적을 피하며 크레타섬 서부의 레프카 오리(하얀 산맥)에 은신하였다.
은둔기간동안 크레타에 남은 민주군 게릴라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었는데 내전 종결 당시 수십명 규모였던 파르티잔들의 숫자는 체포, 사살, 탈출(6명이 보트를 타고 이탈리아를 통해 동유럽으로 탈출한 사례도 있었음)등의 사건들을 거치며 1960년대 중반에는 단 2명만 남게 되었다.
파르티잔들은 여러 동굴들을 거주지로 삼고 풀들과 야생동물들, 때로는 마을주민들이나 목동들이 전해준 음식을 먹으며 생존하였다. 멀리서 마을 축제를 지켜보고 크레타 전통 음악을 들으며 속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도 하였다.
수십년의 기간동안 세번의 전향권유가 있었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1974년 그리스의 군부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찾아왔다. 1975년 2월에는 그리스 신정부가 공산당을 합법화하였으며 그때까지도 산속에서 은거하던 민주군들의 사면또한 이루어졌다.
1975년 2월 23일, 30여년전 총을 들고 산에 들어갔던 20대 청춘들은 50대의 중년이 되어 마침내 산을 내려왔다.
스피로스 블라자키스는 하산 이후 아테네 근교에서 살았으며 요르고스 초바나키스는 크레타에 남았다. 두 사람은 1996년에 한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요르고스는 11월 1일에, 스피로스는 12월 4일에 눈을 감았다.
한줄요약: 1940년대 초반에 등산해서 1975년에 하산함
60년대 넘어서쯤엔 둘다 살살했나보내
저기 지형이 좆같긴 한가봄. 낙지도 종전할때까지 저기서 버텼던데 - dc App
오스만 제국 .. 당신은 대체 저길 어캐 정복한겁니까?
@ㅇㅇ 크레타 저항 유명하잖아. 오스만 지배 막판엔 크레타 거의 통제불능상태였음 - dc App
@Anoa 난 몰랐음.. 암튼 저긴 방어 만렙 찍은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