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 5년(1901년) 의주진위대(6연대 1대대) 봉급성책(俸給成冊)


https://kyudb.snu.ac.kr/book/mfPdf.do?book_cd=GK27290_00&vol_no=0001 


4월부터 9월까지의 급여 총계가 적혀 있는 짧은 책자다 


보면 이렇다


- 장관봉급(장교 급여) 565원 5전 40리 (식비 포함)

- 대대본부 (대대본부 근무하는 사병) 38원

- 1중대 425원 20전

- 2중대 420원 60전

- 3중대 431원 80전

- 4중대 633원 10전

- 삭주 (장교 포함) 236원 25전 

- 창성 (장교 포함) 241원 60전


급여 차이를 보니 이 시점에 중대들이 완편이 되진 않았나 보다. 


삭주와 창성은 전에 진위대 구조 https://gall.dcinside.com/war/4490281


글에서 다뤘는데 당시 의주진위대의 분견대였다.


급여가 거의 중대의 절반 쯤 되는 거 보니 독립소대라 일반 소대 보다 규모가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창까지 있었다)




진위대 대대의 경우 장교는 대대장1, 부관1, 의관(군의관) 1, 향관(재정장교) 1, 중대장 5, 소대장 20명으로 약 30명 정도다.


승정원일기 기록을 보면 그외에 주무기관(병기장교) 등을 두는 경우도 나오는데 기본적인 편제는 그렇다.


이 시절의 군대는 오늘날의 군대처럼 참모부가 크지 않았다.


모병제 군대임에도 장교 30여명의 급여가 (완편 기준) 병사 200명 규모의 중대 보다 조금 적다는 점에서


당시 장교들한테 돈을 잘 줬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지방관인 군수 보다 대위급인 정위의 연봉이 더 높았고 초임 교사의 4배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