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선진적인 기보포 합동운용 체제는 이미 이슬람 세력과 싸우면서 프랑스군과 비슷하게 화기를 많이 굴려본 스페인군의 참전과, 돈 많은 이탈리아 친구들 때문에 빠르게 우위를 상실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전쟁은 프랑스군과 스페인군, 그리고 베네치아군과 교황군 그리고 기타 군소세력들이 복잡하게 엮이면서 장기화된다.

크게 늘어난 아키버스 부대의 운용은 다른 병종과 조합되어 잘 활용된다면 몇 차례라도 잘 조직된 대규모 중장기병 혹은 보병의 돌격을 막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1503년 4월 28일에 일어난 체리뇰라Cerignola 전투와 1512년의 라벤나 전투가 그것을 잘 보여주는 한 예였다.

스페인의 명장인 'Great Captain' 코르도바는 1495년 세미나라 전투에서 스페인군이 프랑스군에게 패배한 뒤로 아케버시어 부대의 숫자를 크게 늘려놓고 있었다. 그는 체리뇰라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잘 볼 수 없는 위치에 야전 참호와 토담을 만들고 총병과 십자궁병을 다수 배치함으로서 프랑스군의 돌격력을 약화시키고 충격 효과를 주고자 했다.
그의 의도는 정확히 들어맞아 프랑스군 기병대는 지근거리에서 큰 피해를 입고 후퇴해야 했고, 높은 관통력을 보여준 아키버스는 효과적으로 기병대의 피해를 키웠다. 아키버스의 피해자 중에는 총지휘관인 Nemours 공작 루이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프랑스군의 포병대는 스페인군의 야전축성을 파괴하는 데 실패했고, 결국 스페인군의 기보 총돌격은 프랑스군을 패주시키며 스페인군의 승리를 확정지었다.

체리뇰라 전투의 의의는 프랑스군과 스페인군 두 세력만이 맞붙음으로서 연합 군대들이 격돌한 다른 전투들과는 다르게 둘간의 순수한 군사적 역량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는 데 있다. 이 두 세력은 이후에도 주도적으로 이탈리아 전쟁을 이끌어 나가며, 베네치아, 스위스, 교황령을 위시한 여타 세력은 다소 종속적이고 사소한 역할만을 수행했다.

1512년에 일어난 라벤나 전투에서는, 그러나, 여전히 기병이 승패를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그런 경향은 향후 백 년이 넘게 지속되는데, 귀찮다 앍앍곶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