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미 해군 대령이자 National War College 전략연구그룹의 선임 연구원인 NR 구딩 주니어는 [미크로네시아에서 일본의 역할](A role for Japan in Micronesia)이란 제목의 논문을 미국 포드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구딩 대령은 이 논문은 학문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하에 쓰여진 것으로, 반드시 국방부나 정부 관계자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 공표에 즈음해서는, 국방부의 검열을 받아 출판이 승인됐다고 전문에서 밝히고 있다.
구딩 대령의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됐다. : 옛 전장(미크로네시아)에서 옛 적(일본)의 역할을 증가시켜야 한다.
논문은 미크로네시아를 잠재력이 지극히 높은 지역으로 인정하면서 MICPAC(Micronesian Pacific Defense Force), 즉 미크로네시아•태평양 방위군의 창설을 제안하고 있다.
동시에 구딩은 미크로네시아에서 일본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1. 미크로네시아 지역으로의 일본 자본 투하
2. 팔라우 바벨다옵 제도에 석유 비축 기지 건설
3. 해상 보급로에서 방위의 분담
1. 미크로네시아로의 자본 투하에 관해서는 케네디 정부 당시 미크로네시아의 경제 실태를 조사한 솔로몬 보고서에서도 일본의 사업가들에게 경제적 분담을 시키면 미국의 부담이 경감될 것이라는 전망이 언급되어 있었는데, 여기서도 거의 동일한 논리가 전개되어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미크로네시아는 미국에 거의 매력이 없다. 인적 자원, 토지, 광물 자원 모두 빈약하기 때문에, 경제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필연적으로 재정 원조와 외국 자본 투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1952년에 미국이 이 지역에 제공한 재정 원조액은 650만 달러였지만, 이 논문이 나온 1975년에는 7,000만 달러로 급등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프라나 산업 등의 개선은 지지부진했다. 원조 정책 자체가 오히려 수출 품목 생산을 중단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따라서 일본이 미크로네시아에 대한 자본 투자를 늘린다면, 미국의 무의미한 원조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는 미크로네시아의 경제를 호전시키고, 이 지역의 안정에도 반드시 기여하게 될 것다. 구딩 대령은 “현재의 일본은 재군사화나 팽창주의에 대한 우려가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
2. 바벨다오브에 석유 비축 기지 건설
그는 석유 파동 직후의 일본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슈퍼 포트(환적항) 건설에 관한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아랍의 정책에 대해 일본이 지닌 극단적인 약점은, 일본이 원유의 82퍼센트를 OPEC 국가들로부터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 일본에게는 석유 비용을 절감하거나 배급 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일본의 초대형 유조선 쇼와마루가 말라카 해협에서 좌초되어 대량의 원유를 유출한 사건을 언급하며, 보다 남쪽의 롬복 해협을 이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제안한다. 그렇게 된다면 팔라우의 바벨다오브가 중계 지점으로 부상한다.
즉, 그의 제안은 이와 같다. 중동에서 출발한 원유는 먼저 초대형 유조선을 통해 롬복 해협을 통과하여 바벨다오브의 대형 항구로 들어온다. 이곳에서 원유를 하역하고 정제한 뒤, 다시 소형 유조선에 환적하여 일본으로 운송한다. 그렇게 하면 중동에서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비축된 석유를 통해 공급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해상 보급로의 방위 분담은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이다. 일본이 앞서 언급한 대로 미크로네시아에 진출하게 된다면, 해상 교통로(특히 석유 수송을 위한)는 일본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즉, 일본이 미크로네시아에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면, 자연히 이 지역의 안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구딩 대령은 이 보급로의 방위를 위해 ‘MICPAC(미크로네시아·태평양 방위군)’을 미일 공동으로 창설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일본의 미크로네시아에서의 세 번째 역할(이것이 구딩 대령 논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은 방위 분담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석유 보급의 안전을 확보한다는 생각은 일본에게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다. 따라서 구딩 대령은 방위군을 창설하면 “일본을 교묘하게 유도하여 매우 천천히 재무장으로 향하게 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일본으로 하여금 자신의 안보 관계를 자각하게 하는 데에도 연결된다고 말한다. 게다가 이것은 미군이 요코스카, 사세보 등을 계속 사용하는 데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이 MICPAC 구상이었다. MICPAC은 요코스카 혹은 괌에 사령부를 두고, 괌과 미크로네시아 내에 작전 기지를 가진다. 방위군의 구성은 미 항공모함 1척, 미 구축함 2척, 그리고 일본의 대잠부대로 이루어진다. 보급은 일·미 양측의 로테이션으로 수행한다. 그리고 감축되는 미 해군 전력은 일본의 함대와 인원으로 보충한다.
물론 여기서 태평양의 위협으로 상정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소련 해군이나, 장기적으로는 중국 해군이었다.
(팔라우에 Superport를 건설하는 것에 대한 논의 자체는 실제로 있었지만, 조기에 팔라우 현지에 계획이 유출되었고 현지인들의 완강한 반대로 구체적인 단계에 접어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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