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이 최대의 적으로 간주한 것은 국민당의 장제스였다. 마오쩌둥은 될 수 있으면 국민당군이 일본군과 정면으로 싸우도록 하고, 시기가 무르익으면 소모전으로 피폐해진 국민당군을 두들겨 자신이 중국의 패자가 될 계산을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1939년 마오쩌둥은 판한넨이라는 중공 스파이를 상하이에 있는 일본 첩보기관인 '이와이 공관'에 잠입시켜 외무성의 이와이 에이이치와 친숙해지도록 했다. 이와이 에이이치는 판한넨으로부터 국민당군에 관한 군사정보를 취득했고. 그 대가로 고액의 정보 제공비를 지불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판한넨은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중공군과 일본군간의 정전을 제의했다는 사실이다.
1936년 이후 형식적이긴 하지만 제2차 국공합작을 했기 때문에 중공군이 국민당군의 군사정보를 취득하는 것은 용이했다. 일본이 일중전쟁에서 싸운 상대는 중화민국의 장제스 정권이었다. 따라서 일본 측으로서는 국민당군에 관한 군사정보를 얻는 것은 전쟁을 유리하게 이끄는 데 도움이 되는 만큼 고마울 수밖에 없었던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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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현재의 중국, 즉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하자마자 마오쩌둥은 스스로의 '개인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판한넨을 체포해 투옥한다. 판한넨은 마오쩌둥의 책략을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었다. 마오쩌둥은 판한넨을 매국노로 몰아 그 입을 원천봉쇄해 버렸고, 판한넨은 결국 1977년 옥에서 숨을 거둔다. 1976년 마오쩌둥의 사망에 따라 문화혁명은 종말을 고하게 되지만, 판한넨의 투옥은 마오쩌둥이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어서 그의 명예회복은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판한넨의 명예가 회복된 것은 사후 5년이 지난 1982년이 돼서야 가능했다.
그러자 판한넨을 아는 많은 지인들은 그의 원통함을 풀어주기 위해 판한넨을 둘러싼 정보를 수빚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마오쩌둥의 지시에 따라' 중국공산당을 위해서 행동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술해 책으로 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판한넨의 정보생애』와『판한넨전』 같은 제목의 책이 중국 대륙에서 출판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역사의 진실은 숨길 수 없었던 것이었을까. 판한넨과 관련해서는 2005년, 그리고 이와이 공관에 잠입했던 또 한 명의 저명한 중공 스파이 위안수에 관해서는 2011년, 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중국공산당신문>의 전잪판인 <중국공산당신문망>에는 '그것은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였다'라고 그들의 공적을 찬양하는 대목이 있었다.(위안수도 판한넨과 동시에 연좌되어 투옥됐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모두 '판한넨도 위안수도 일본 측으로부터 일본군의 정보를 이끌어내 중공군이 일본군과 싸우는 데 유리하도록 스파이 활동을 수행해 중공군의 승리를 이끌었다'고 하는 줄거리가 기술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공 측 자료와 일본 측 자료는 사실이 정반대였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이와이 에이이치가 저술한 회상록『회상의 상하이』에서 이와이 에에에치는 판한넨을 의심의 여지없이 '일본 측을 위한 정보 제공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판한넨이 '중공군과 일본군의 정전'을 제의해 온 것을 놀라운 심정으로 기록했다.
한편『판한넨의 정보생애』와『판한넨전』도 판한넨 등이 '정보 제공료'로 이와이 공관으로부터 보름에 한 차례씩 2000홍콩 위안(당시 경찰관의 약 5년치 급여에 상당)을 받았다는 것을 무심결에 적고 있다. 만약 <중국공산당신문망>의 주장대로 중공 스파이가 일본에 관한 정보를 입수해 옌안에 있었던 마오쩌둥 등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라면(다시 말해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이와이 에이이치와 접촉했었더라면), 일본 측으로부터 거액의 '정보 제공료'를 받는 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판한넨과 위안수가 일본군 정보 입수를 위해서만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면 마오쩌둥은 어떤 이유에서든 판한넨 등을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던 자'라고 해서 투옥해 종신형에 처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마오쩌둥의 전략은 어디까지나 천하를 취하기 위해 정적인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군을 약화시키는 것에 있었다. 이를 위해 일본군이든 왕자오밍의 괴뢰정부든 가리지 않고 어디와도 손을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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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한넨이 상하이엥서 스파이로 암약하고 있을 당시, 중공의 '특무기관사무소'(지하조직) 하나가 홍콩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마오쩌둥의 명령을 받은 중공 측의 랴오청즈와 판한넨이 근무하면서 홍콩 주재 일본영사관에 있었던 외무성의 고이즈미 키요카즈(특무공작원)와도 협력했기 때문에 어느 의미에서는 '중공-일본군협력첩보조직' 같은 것이 만들어진 셈이다.
출처: 모택동 인민의 배신자, 엔도 호마레 저, 박상후 옮김, 타임라인, 2019년, 6~10쪽
애초에 태평양전쟁은 그냥 미국 원맨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