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핫토리 다쿠시로는 전현반격전에 참가를 안 함.
하지만 우리가 우선 봐야 할 일본군 지휘관은 내가 전 글에서 말한 핫토리 다쿠시로라는 장교임.
이놈이 없었음 일본은 전현까지 후퇴 할 때 손실을 크게 입었을 확률이 큼.
경우에 따라선 반격전 할 전력도 없었을 지도.
계급은 대좌이고 이 전현반격전을 하는 일본군 65보병연대에 연대장으로 착임하기 전까진
대본영 육군부 작전과장으로 일하고 있었음.
즉 태평양전쟁 기간동안 일본육군의 삽질에 깊게 관련된 사람임.
더 깊게 파면 노몬한 전투당시 중좌계급으로 관동군 작전주임이었음.
물론 이 결관 다 알므로 생략하고 노몬한 사건의 패전책임을 물어 본토의 보병학교 연구부원으로 좌천성 발령을 냄.
근데 이러다가 갑자기 일본육군 교육총감부 총무부원으로 발탁되고 그 뒤에 4달즈음 지나니까 참모본부 작전반장이 됨.
그러다가 대좌 진급하고 작전부장이 됨.
이후엔 과달카날전투까지 일본육군의 작전에 관여하다가 자기 따까리인 작전반장 츠지 마사노부랑 함께 경질됨.
근데 또 10개월 뒤에 대본영 작전과장이 됨
그러다가 1945년 2월에 65보병연대장이 됨.
참고로 이 일본군 65보병연대는 최전선에 있었음.
상급부대인 13사단 사령부가 있는 의산하고 65보병연대와의 거리는 대충 100킬로 정도 떨어져 있음.
그냥 가만히 있을 때도 국민당군과 중대급 교전을 수시로 벌임.
근데 중지파견군 사령부에서 명령이 내려옴 이제 해안가로 상륙할 미군하고 결전을 벌여야 하니까 그만 하고 다 돌아오란 것임.
이때 핫토리 다쿠시로의 65보병연대는 후퇴하는 11군의 후위를 지키게 됨.
물론 11군이래봤자 남은 전력은 껍데기 수준이지만 어쨌든.
이 때 65보병연대는 핫토리 지대로 이름을 고침.
이유는 타 부대들이 철수해서 도움을 못주거든.
대신 자력갱생하는 대신에 독자적인 작전권을 주기로 하였고 그래서 65보병연대가 핫토리지대가 되어버림.
어쨌든 이 65보병연대는 일본군의 철퇴를 알아차린 국민당군의 반격도 막으면서 틈틈히 앞서 말한 대대급 병력들로 한정공세를 취하며 역습까지 함.
이건 일본군에 지체전투라는 이름으로 교리화가 되어있는 것이라 핫토리 지대는 대대급 병력들이 국민당군에 포위되어도 알아서 뚫고 나오고 알아서 각지의 수비대-이 핫토리 지대가 빠져 나온 다음에 이 지역은 독립대대 하나가 담당하기로 함-와 제휴하면서 싸우면서 철수함.
중간에 각개 도하까지 하면서 100킬로미터를 후퇴하며 13사단 사령부가 있는 곳까지 가니까 이미 13사단사령부는 떠난 지 오래고 대신 있던 34사단 사령부도 핫토리지대 오니까 인수인계 하고 시마이를 쳐버림.
34사단부대들이 이제 가니까 눈치 챈 국민당군이 또 몰려와서 핫토리연대는 거기서도 또 국민당군과 싸움.
후퇴하면서 중국군과 싸우고 또 후퇴하는 일의 반복임.
돌격하는 중국군에게 진짜 문자 그대로의 역돌격을 해서 털어버린다음에 역습 걸어서 오히려 주변 중국군들 박살 내고 후퇴하고 이런 일을 계속 반복함
참고로 이거 후퇴하는 지역이 귀주성임. 난이도 빡셈.
이렇게 해서 11군이 1945년 7월 즈음엔 전현에 다 모임.
근데 도착하고 보니까 껍데기지만 그래도 사단인 3 13 34 이 주력 3개사단이 11군 예하에서 이탈해버림.
상급부대에서 다른 지역으로 보내버림.
근데 11군의 상급부대인 6방면군은 1개월 이상 전현을 방어하란 것임.
근데 이젠 11군엔 58사단과 88독립혼성여단과 22독립혼성여단밖에 없게되는 꼬라지가 난 것임.
11군에선 시잇빨 소리가 절로 나옴.
그런데 어쩌겠음 까라면 까야지.
그래서 자기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국민당군 20군과 26군에게 역습을 걸어서 개털어버리고 다시한번 미군보급을 하는 게 전현반격전임.
우선 타 부대 소속이지만 11군 뒤에서 각개 후퇴로 오고 있던 3개 대대를 일본군 용어로 지휘하 부대로 임시 편입시켜 전방에 세우고
88여단은 그 뒤에 있는 시가지 앞에 방어선 치고 있다가 국민당군이 그 쪽으로 오게 유인한 다음
58사단과 22여단은 전현 북방의 삼림에 매복해 있다가 우회해서 국민당군을 친다는 계획을 세움.
그리고 이 전면에 세운 부대들이 시가지 내로 중국군을 유인해내니까 청색 신호탄 쏘아 올려서 전 일본군이 한 번에 중국군을 개털어버림.
이 때 11군 직할대에 3전차연대가 있었는데 이들도 전부 일본군 말로 전력 출격을 해서 국민당군을 개털어버리는데 일조함.
그리고 일본군은 전과확대를 위한 추격을 개시하여 중국군 섬멸을 한 시가지에서 약 10km 정도 더 남쪽으로 내려간 다음 중국군이 놓고 간 미군물자로 다시 보급함.
이 때 일본군은 bar같은 미제 무기를 되는 대로 가져다가 쓰는 상황이었음.
임팔 때 일본군이 연합군 물자 입수했을 때 이걸 처칠급여라고 부르던 거랑 같은 원리임.
당장 쓸 무기가 부족한데 가릴 게 뭐가 있겠음.
참고로 이 날이 1945년 8월12일임.
1945년 8월 15일에 전현에서 화남지역으로 철수를 하기 시작함
근데 왜 핫토리 다쿠시로에게 저 임무를 맡겼냐 하면
저 당시즈음 가면 저기엔 육사출신은 고사하고 다른 임관경로로 소위였다 예비역이 된 상태에서 재동원 된 장교조차 부족했거든.
근데 육군유년학교-육사 예과- 육사 본과-육대 본과 졸업까지 한 대좌가 와버린 것임.
짬 때리기 딱 좋은 위치지
출처: 전사총서, 쇼와 20년의 지나파견군/아사구모 신문사/1973
한자로 뭐라쳐야됨? - dc App
온전 전 고을 현
ㄱㅅㄱㅅ - dc App
@37mm 출처: 전사총서, 쇼와 20년의 지나파견군/아사구모 신문사/1973
햄토리 다쿠시로좌는 어쩔수없지 ㄷㄷ - dc App
커버해야 될 지역은 넓고 수적으로도 열세니 발묶이거나 주도권넘어가면 끝장이다라는 생각으로 공세요격하고 다닌건가 기계화 잘된병력이 더 있었으면 굉장했을거같은데 - dc App
기억상이라 정확한 지는 모르겠는데 지들이 도하해서 건너 놓곤 다시 건너가서 레이드 뛰고 다시 돌아온 적도 있는 걸로 앎
만주쪽 일본군이 소련에 포풍처럼 털린거하고 비교되네
거긴 그때가면 머릿수만 채워놓은 일본에서도 3선에 가까운 지역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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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로 치면 합참 작전과장하던 사람이었나?
국민당군만 존나 잘팬거네
과달카날철수때 야노 부대가 한 일과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