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이라도 무조건 좌관급을 달아주지는 않았음.
즉 대위에서 소좌 되는 게 빡셈.
물론 일본 내에선 6등과 7등 관등으로 주임관이고 둘 다 당시 조선총독부로 치면 군수나 서장급이라 한국으로 치면 4급 공무원에 상당해서 사회에서 보면 조온나 간부긴 한데
여기도 정년이 짧아서 중좌 아니면 비정규직이나 다를 게 없는 인생들이었음.
게다가 일본이 돈없어서 20년대에 우가키 군축으로 사단을 4개를 없애버림.
일본 사단이 내 기억상으로 21개 있었는데 4개랑 지역에서 병무청 업무와 군인대상 재취업과 보훈 업무를 담당하는 연대구 사령부 16개, 그리고 육군병원 몇 개를 쓱싹 해버린 것임.
대위들 입장에선 ㅈ된 거지.
보직이 싹 갈려나간 거니까.
그리고 당시 일본에서 사단은 지역연고제라 그냥 군대가 아니라 각 지역의 위상을 나타내는 수단으로도 쓰여서
이 사단의 폐지는 대중들에게 반군의식을 불어넣어줬음.
오죽하면 군인을 비하하는 말 중에 군인이 xx면
파리도 새다라는 말까지 있던 걸로 기억함.
그렇다고 전역하고 나무위키마냥 교련교사 같은 대체직업이 많은 것도 아님.
요즘 우리로 치면 대위소령들 전역한다 해서 예비군 읍면동대장 자리가 무조건 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래서 중매결혼나 인맥소개결혼이 많던 당시에 군인은 결혼직업 카스트에서 하위를 차지하게 됨.
게다가 경제대공황의 여파로 삶이 진짜 팍팍해짐.
그렇다고 해서 자기들이 육대같은 델 갔다거나 하는 건 아님.
육대는 소속부대에서도 밀어줘야 하고 자기도 운이 따라야 붙는 데니까.
설령 육대를 가더라도 3년 본과 과정을 다 안밟으면 사단참모 수급용의 1년 전과 과정 같은 걸 하면 큰 의미가 없음.
그렇다고 해서 고향에 돌아가면 먹고 살 만 한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님.
이 사람들 출신성분 보면 농어촌 출신들이 많음.
그리고 이들은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으로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농축수산물로 가격이 떨어져서 먹고 살기 힘들었음.
당시 일제는 도시에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가격억제를 위한 온갖수단을 펼쳤었거든.
그리고 경제대공황으로 먹고살기 팍팍해졌음.
아무리 봐도 미래가 너무 암담하다 보니
싹 갈아엎자란 생각이 스물스물 들게 되었고 그래서 터진 게 바로 226.
물론 이건 실패로 끝났지. 하지만 이쪽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만주로 넘어가서 온갖 일 다 벌리고 다님.
물론 우가키 군축이 잘못된 건 아님.
우가키 군축으로 돈이 좀 남으니까 전차 고사 비행 연대를 시범적으로 편성하고
여기에 수급할 간부양성을 위한 자동차학교 통신학교 비행학교를 만들었거든.
하지만 이건 기껏해야 수혜를 일부만 보는 거고 일본 육군의 주력인 보병은 피만 잔뜩보는 개혁이었음.
우가키 군축은 합리적인게 맞는거 같은데 뭔가 결국 군국주의화의 결정타도 경제불황인거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