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형무소에는 시신이 가득



 만수대 인민위원회라는 건물에 들어 있던 김일성의 집무실은 황급히 빠져나간 그곳 방주인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어지러이 흩어진 집기류, 서랍이 열린 책상, 비스듬하게 걸려 있던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 등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기는 하지만, 김일성은 매우 황급히 평양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평양을 사수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려놓고서다. 그를 믿고 평양을 지키던 북한군 수비대는 우리 국군과 미군이 시내로 진입하자 단발마적인 저항을 잠시 펼치고는 역시 그 뒤를 따라 황망하게 도망을 치고 말았다. ‘이 사람이 이 땅에 가혹한 전쟁을 일으킨 주인공인가….’라는 생각에 빠져 나는 그곳에 서서 김일성이라는 인물을 한동안 생각했다.


 오래 머물 일은 없었다. 그저 적의 수괴(首魁) 김일성이 어느 자리에 앉아 어떻게 생활한 인물인가가 우선 궁금했다. 나는 곧 그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이어 도착한 곳이 평양형무소였다. 그곳은 처참했다. 미처 데리고 가기 어려웠던 반공적 성향의 사람들을 모두 그곳에서 학살하고 그들은 도망쳤다.


 형무소 우물에는 그런 시신이 가득했다. 마당에도 여기저기에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아주 참혹한 광경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북한군이 남침을 벌인 뒤 남녘에서 강제로 끌고 왔던 유명한 사람들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확인할 여유는 내게 전혀 없었다.


 곧 평양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더글라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이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요인들이 방문하면서 그에 대한 준비도 필요했다. 15연대를 이끌었던 최영희 연대장이 “요인들 방문에 대비한 일을 맡겠다”면서 후방인 평양에 있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아군 트럭은 쉼 없이 북으로 향했다가는 곧 짐칸 가득 북한군 포로를 싣고 내려왔다. 길에는 전의(戰意)를 잃은 북한군 포로가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그들은 적지 않은 수가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아군이 당도하면 순순히 손을 들고 나와 말없이 트럭에 올라탔다. 민가에 들어가 밥을 얻어먹던 도중에 그곳 주변에 도착한 아군을 보고 황급히 도망치는 북한군 패잔병도 많았다.


 미군은 맥아더 장군의 지시에 따라 평양 북방 56㎞ 지점인 숙천, 그리고 평양 서북방 60㎞ 지점인 순천에 대규모 공습강하 부대를 투하할 계획이었다. 앞에서 소개한대로 그 뒤를 받쳐주는 역할을 국군 1사단이 맡은 상태였다.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우리는 부지런히 길을 가야 했다.



출처: 백선엽의 6.25.징비록-軍은 어떤 존재인가 3권, 백선엽 저, 유광종 정리, 책밭, 2016년, 14~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