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직은 독립운동 단체에 발 담은 전력이 있고 이후로 야매 세브란스 의전 졸업장을 걸어놓고 한의사 코스프레로 연명하다 피살되었단 건 잘 알려져 있지
한의대 생기기 전 한의사는 그냥 드라마 허준 처럼 스승님 곁에서 일머리 익혀서 배우는게 아니냐는 그런 생각들 하겠지만
대한제국 정부는 1900년부터 한의와 양의에게 인허장을 발급해(오늘날 의사 면허) 이들을 정식의사로 인정 통제했고
일제는 구한국 시절 인허장을 받은 이 외에 한의업을 배우는 이의 신규 면허 발급을 차단하면서 형직이의 야매 병원놀이는 언젠가 뽀록났을 가능성이 큼
그나마 의료 인프라가 열악했던 북만주 쪽이었으니 사람들이 찾은것이지
한의사 면허가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한 것은 1951년 의료법 제정 이후였고 독립운동가들의 서훈이 본격적으로 시작된건 1962년부터임
그것도 안중근, 백범, 유관순 같은 이른바 네임드 양반들부터 서훈이 시작되었으니
꼴랑 비밀 서클 발담갔다고 서훈 시작하자마자 바로 훈장이랑 정부 수당받는건 사실상 힘들지
그럼 형직이가 월남했다 치면 대대로 평안도에 살던 사람이 낯선 이남에서 흙파먹고 살기도 뭣 하고 의지하고 땅 빌려줄 일가친척도 없고 본관의 전주 모악산 쪽과는 이미 여러 대 전에 연고가 끊겼음
그럼 할게 천상 야매 한의사밖에 없는데 보건사회부가 가만히 있음? ㅋㅋㅋㅋ
단속으로 고발당해서 조사 받다가 '저 영감탱이 김일성 애비다' 사실 밝혀지면 바로 좆되는 거여
재남 사회주의자나 북괴 부역자 가족들 행적 보면 그 시절에는 ㄹㅇ 좆됐음ㅋㅋ
잘해야 삼팔선 인근 전방 군부대에 서커스단마냥 성주야 애비다 선무방송 월드투어 하는거밖에 더있음?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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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하더라도 성주가 지 애비 서커스단마냥 월드투어 하는거 가만히 내버려두지는 않을테고 분명히 간첩 보내서 데려오든지 뭘 하든지 했을텐데 언젠간 그거 꼬투리잡혀서 남산에서 착하게 만들긴 했을듯
김일성 애비도 런치는 공산주의라고 나름 대접은 잘 받을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하고
이게 정배임ㅋㅋ 견훤이 괜히 상보 취급받았겠냐고 - dc App
꽤 오래 야매 한의사 해먹은거 봐선 저 시절 정도면 잘 먹고 살았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