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적백내전이 일어나자 서구 국가들과 미국은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하는 것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낌.
1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볼셰비키의 전염병이 전세계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적백내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함
1918년 8월, 약 8천명의 미군이 북극해의 아르한겔스크와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로 파병됨
아르한겔스크에 주둔한 미군들은 적군의 파상적인 공세를 막아내며 버티다 3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선 결국 철수함
블라디보스토크에 주둔한 미군들은 이미 7만명의 일본군이 연해주 일대를 '안정화' 시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음
이들의 임무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로프스크까지 이어지는 시베리아 철도 구간을 방어하는 것이었음.
한때는 훨씬 더 서쪽에 있는 블라고베셴스크까지도 진격했으나 방어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철수함
미군은 러시아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백군과 적군을 중립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함. 그리고 민심을 잡기 위해 미국산 밀과 옥수수 가루를 배급하며 치안 안정을 꽤함.
이는 어느정도 성과를 거뒀으나, 적군을 완전히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음.
적군 파르티잔들은 미군과의 정면 대결은 최대한 피했으며, 밤이 되면 철로와 전신주를 끊는 사보타주 공작을 벌이며 저항함
무엇보다, 일본군은 미군을 매우 성가셔했는데 장군들은 만주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경계하였고 병사들은 툭하면 미군에게 시비를 걸고 검문검색을 일삼음. 심지어 어떤 미해군 중위는 일본군 초병에게 사살 당했는데,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하고 보상금 1만 5천 달러만 받고 유야무야 넘어감. (주: 원래 유족측은 10만 달러를 요구함)
이들은 미군을 동맹국이 아니라 자신들의 파이를 빼앗아 먹으러 온 경쟁자라고 여겼음.
또한 미군들은 일본군과 백군의 '민사작전'에 강하게 반발함. 백군 카자크는 적군 용의자로 지목된 민간인들을 심하게 고문했고, 일본군들은 아예 마을을 통째로 불태우고 사람들을 카타나로 참수해댐. 이로 인해 미군과 백군과 일본군은 서로를 강하게 불신함
미군 병사들도 의미없는 임무와 전투에 사기가 갈수록 저하되며 불만이 폭발할 지경에 이름. 그리고 때마침 콜차크 장군이 살해 당하고, 백군이 대부분의 전선에서 붕괴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미 의회는 재빠르게 미군들을 철수 시키기로 결정함.
그렇게 1920년 4월, 미군들은 그 어떤 영광과 전과도 없이 48명의 사상자라는 피해만 남긴 채 연해주를 떠남.
훗날 국무장관 뉴턴 D. 베이커는 '아무 의미 없는 원정이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함.
저 시대 마지막으로 러시아 밟아본 미국인이 됐겠네
미군 이겠지
아니 민사가 제일 정상적인 미군이라니
미국의 블라디보스톡 파견. 알고는있었는데 이런사정이 있었구나.
푸틴 망하고 한번 더들어가라
8만 5천 달라는 원폭에 쓰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