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웨톡 환초(엔게비 섬, 에니웨톡 섬, 페리 섬)
각섬에는 95식 경전차 하고가 3대씩 배치되어있었음. 엔게비섬은 가장 먼저 미군의 공격으로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대는 궤멸함.
미군의 침공이 있기전, 일본군에게는 6주정도의 시간이 있었음. 최대한 콘크리트 벙커등 지상 방어진지를 만들어보려했으나 시간과 건설자재, 중장비 부족으로 지상방어대신 지하방어진지로 선회함.
에니웨토크 섬은 길고 상당히 얇은 섬임. 서쪽 끝이 가장 넓었고 동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며 동쪽 절반은 매우 좁다. 섬의 서쪽 절반에는 석호 해안 근처에 도로가 있었고, 동쪽 끝으로 향하는 길의 일부가 있음. 주요 건물은 섬의 절반 가까이, 석호 쪽에 있었음.
맨 오른쪽 아래의 에니웨톡 섬과 페리섬
1944년 1월 4일 제1상륙여단이 에니웨토크 환초에 도착했음. 여단에는 3,940명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중 2,586명이 에니웨톡에 배치됨. 이 사람들의 대부분은 여단 사령관인 니시다 요시미 장군의 본부가 있는 패리 섬에 배치되었음.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일본군은 여단 병력 779명, 민간인 24명, 해군 요원 5명을 에니웨토크에 배치했으며 모두 하시다 마사히로 중령의 지휘를 받았고 수비군은 화염방사기 2개, 수류탄 발사기 13개, 경기관총 12정, 중기관총 2정, 50mm 박격포 1개, 81mm 박격포 11문, 20mm 자동포 1개, 20mm 대포 3문, 경전차 3대를 보유하고 있었음. 수비군은 5개 그룹으로 나뉘어져서 세 개는 석호 해안에 배치, 하나는 동쪽의 좁은 땅 목에 배치, 나머지 하나는 예비군 역할이었음. 대부분의 방어선은 여우굴(구멍진지)과 참호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일부 콘크리트로 구성된 벙커축성 시도도 있었지만 중장비와 자재부족으로 완성하지 못했거나 완성한것도 타라와의 벙커에 비해 턱없이 약했다고.
에니웨톡 섬은 라군을 건너 엔게비(천번째 침공으로 수비대 궤멸)에서 남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져 있는 이 섬은 2월 19일 아침, 육군 제106보병연대공격을 받게됨. 해리 캘컷 대위는 이 공격에서 육군을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전차 중대를 자원봉사시켰다. 침공시간은 2번째 독립 전차 중대의 M4A2를 실은 LCM이 라군을 건널 시간을 주기 위해 두 번 연기되었다. 본부 소대의 로버트 마이어는 "육군은 곧바로 해변에서 압박을 받았고... 우리가 그들을 구한 셈이다"라고 회고했다. 캘컷의 전차들의 도움으로 보병은 해변을 벗어나 내륙으로 진격할 수 있었다. 섬에 은폐된 세 대의 Type 95 전차는 보병이나 사전 폭격으로 모두 파괴되었다. 엔게비에서 온 제22해병대의 지원으로 그날 말에 섬은 완전히 확보되었다. 2번째 독립 전차 중대의 차량은 다음 날 LSD에 다시 실렸다.
전차전도 없는 데숭
마지막 페리섬은 전차전 있음
섬 모양보고 저기서 전차전?? 했는데 글 내용 보고 잉?>
첫째글에 있었는데숭 다음글에도 있음 섬이 작긴해도 셔먼이 돌아다니면서 일본군 소탕할정도의 크기임
걍 신기해서 댓달았음
ㅋㅋ 진짜 좁네 -"시진핑애비없음"
좁은데 더무서운건 세개의 섬 일본군들은 각섬이 격파되는걸 보고있을수밖에없었음 죽는걸 기다리는 심정 - dc App
@37mm 하긴 건너가서 도와줄수있는것도 아니고 ㅋㅋㅋ -"시진핑애비없음"
3대 배치하고 말거면 차라리 배치를 안했어야 - dc App
일본은 나름 충분하다생각한듯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