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패독 마이너갤에 올라온 글인데 군갤에서는 언급이 없길래 퍼옴
에리히 레더는 독일 해군 최고참이자
2차 대전 시기 독일 해군을 초기에 총 지휘한 인물로
강력한 수상함대 건조해서 영국과 맞서자고 주장했음
이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종신형 선고받고
1947년부터 나치 전범만 수용하는 슈판다우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1955년 건강악화로 석방됨
카를 되니츠는 독일 해군 장성이자 잠수함 전문가로
2차대전 중후반 독일 해군을 총 지휘한 사람임
에리히 레더는 시간과 예산 때문에 결국 강력한 수상함대 건설하지 못했고
막상 전쟁이 일어나자 독일 수상함대는 영국에 비해 매우 열세라 변변찮은 활약 못해서 레더는 경질 당하고
되니츠의 잠수함대가 독일 해군의 주력이되며
독일이 수상 전력은 열세지만 잠수함이라는 비대칭 전력으로 섬나라 영국을 거의 봉쇄하고 고사 직전까지 만듦
전쟁 끝나고 징역 십년 선고 받고
1947년부터 1955년까지 복역하고 만기 출소함
나치 전범들은 슈판다우에서 별 소란 없이 지냈지만
저 전직 해군 총사령관 둘은 시도때도 없이 논쟁했는데
독일 군수 장관이었던 슈페어의 회고록 '슈판다우 시크릿 다이어리' 등에서 어떻게 논쟁했는지 나옴
"되니츠는 여전히 U-보트 전략의 우월성을 확신하고 있었고, 레더는 수상 함대 건설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주 해군 전략에 대해 격렬하게 논쟁했지만, 결론을 내지는 못했다. 레더는 때때로 되니츠를 'U-보트 제독'이라고 비꼬았고, 되니츠는 레더를 '수상 함대 숭배자'라고 불렀다."
"레더는 자주 '만약 Z 계획이 제대로 실행되었더라면...' 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는 독일 해군이 수상함대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되니츠는 이에 대해 '수상함대는 시대에 뒤떨어진 전략'이라며 반박했다. 그는 U-보트가 현대 해전의 주역이며, 수상함대는 쓸모없는 존재라고까지 말했다. 그들의 논쟁은 때로는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다른 수감자들까지 잠 못 이루게 할 정도였다."
"레더와 되니츠는 거의 매일 정원에서 산책하며 해군 전략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그들의 논쟁은 끝이 없다. 마치 낡은 축음기 레코드처럼 같은 주장을 되풀이한다. 레더는 수상 함대의 중요성을, 되니츠는 U-보트의 우월성을 역설한다. 그들은 결코 서로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레더는 여전히 자신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그는 Z 계획이 실현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며, 마치 비극적인 영웅처럼 행동한다. 그는 수상 함대를 '나의 함대'라고 부르며,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다. 되니츠는 그런 레더를 비웃으며 '골동품' 취급한다."
"두 해군 제독은 마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논쟁을 벌였다. 그들의 논쟁은 늘 같은 주제였다 - U보트냐, 전함이냐.":
"되니츠는 레더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그는 감정적인 호소보다는 논리적인 주장을 펼치며, U-보트 전략이 전쟁 수행에 더 효과적이었다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그는 레더의 수상 함대론을 '낭만적인 시대착오'라고 일축하며,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느 날 되니츠가 '레더의 전략이 해군을 망쳤다'고 말하자, 레더는 '당신이 U보트만 고집한 게 더 큰 실수였다'며 맞받아쳤다. 두 사람 다 자신만의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은 수감 생활 내내 변하지 않았다."
"식사 시간마다 되니츠는 '티르피츠호에 들어간 철강으로 U보트를 20대는 더 만들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했고, 레더는 '당신의 U보트들은 결국 전부 대서양의 무덤으로 갔잖소'라고 응수했다."
"오늘도 두 제독의 논쟁이 시작됐다. 되니츠가 '전함은 결국 값비싼 표적에 불과했소'라고 하자 레더는 '당신의 U보트는 값싼 관짝이었나?'라고 받아쳤다. 이런 논쟁은 이제 우리 모두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급기야 논쟁하다 쉰살 넘게 먹은 전직 해군 원수들이 싸웠다.
"오늘 레더와 되니츠는 정원에서 크게 다투었다. 언성이 높아지고, 서로를 노려보며 격렬하게 손짓까지 했다. 간수들이 달려와서 말리지 않았더라면 몸싸움이라도 벌어졌을지 모른다. 그들의 논쟁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개인적인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전범 수감자들은 끝이 없는 그둘의 논쟁을 어처구니 없어했다.
"감옥은 지루하고 단조로운 곳이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고, 수감자들은 과거를 회상하거나 서로 논쟁하며 시간을 보냈다. 레더 제독과 되니츠 제독은 특히 해군 문제로 자주 다투었는데, 그들의 논쟁은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오래된 레코드판처럼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 같았다."
맨날 시끄럽게 둘이 논쟁해서 나치 전범들이 귀 막을 지경 이었음.
"다른 수감자들은 레더와 되니츠의 논쟁을 지겹다는 듯이 바라본다. 헤스는 귀를 막고, 폰 쉬라흐는 코웃음을 친다. 그들에게는 해군 전략 논쟁이 현실감 없는 낡은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레더와 되니츠에게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인 듯하다."
"헤스는 다른 수감자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혼자였고,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레더와 되니츠가 해군 논쟁을 벌일 때면, 헤스는 종종 귀를 막거나 고개를 흔들며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그들의 논쟁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전직 해군 원수 둘이서 시도 때도 없이 논쟁하는 건 당연히 슈판다우 간수들도 보게 되었는데.
잭 피시맨(Jack Fishman)과 구치소장 유진 버드(Eugene Bird)도 기록함.
피시맨이 쓴 "슈판다우의 7인"이라는 책에서는 되니츠와 레더의 논쟁을 이렇게 기록했다.
"되니츠는 매일 아침 식사 때마다 레더에게 '당신이 U보트 건조를 더 밀어붙였어야 했다'라고 말하곤 했다. 레더는 이에 대해 항상 같은 대답을 했다. '해군은 균형이 필요하다. U보트만으로는 부족해.'"
구치소장 버드 또한 이런 기록을 남겼다.
"두 사람은 마치 아직도 크릭스마리네에 있는 것처럼 논쟁했다. 레더는 '비스마르크호 없이는 북해 작전이 불가능했다'고 주장했고, 되니츠는 '그 돈이면 U보트 50척은 더 만들 수 있었다'며 맞섰다."
피시맨의 "슈판다우의 7인"에는 이런 장면도 나온다:
"한번은 되니츠가 '비스마르크호는 결국 침몰했지만, 내 U보트들은 끝까지 싸웠소'라고 말하자 레더가 격분해서 '당신의 U보트들도 결국은 대서양에서 궤멸당했잖소!'라고 소리쳤다."
유진 버드는 이런 대화도 기록했다
레더: "U보트만으로는 영국을 굴복시킬 수 없었네. 우리에겐 강력한 수상함대가 필요했어."
되니츠: "그래서 당신의 자랑스러운 비스마르크호는 어떻게 됐지? 첫 작전에서 침몰했잖나!"
레더: "적어도 나는 전함으로 영국을 위협했지. 당신의 U보트들은 결국 대서양에서 모두 사냥당했잖나."
피시맨의 "슈판다우의 7인"에서 또 다른 장면
되니츠: "U보트 한 대의 건조비용은 큰 전함의 1/50에 불과했소. 우리가 필요한 건 수량이었다고!"
레더: "당신은 아직도 모르는군. 전쟁은 숫자 게임이 아니야. 제해권은 강력한 전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찰스 컬버하우스 (Charles Culverhouse)는 슈판다우 감옥의 영국군 의무 담당관이었고,
그는 슈판다우 감옥과 수감자들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회고를 남김,
그의 기록에는 레더 제독과 되니츠 제독의 논쟁에 대한 언급도 포함되어 있었다.
"레더와 되니츠는 늙은 제독들이었다. 그들은 과거의 영광에 갇혀 있었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은 거의 매일 같이 해군 전략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그들의 논쟁은 끝이 없었고, 서로의 주장에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마치 늙은 고집불통 노인들이 훈계하는 것 같았다."
"슈판다우 감옥은 극도로 단조로운 곳이었다. 수감자들은 할 일이 거의 없었고, 무료함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레더와 되니츠의 해군 논쟁은 어쩌면 그들에게 무료함을 달래는 일종의 오락거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논쟁을 통해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했을 것이다."
"레더와 되니츠의 논쟁은 때로는 매우 격렬했다. 언성이 높아지고,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특히 고령인 레더 제독에게 그러한 격렬한 감정 소모는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끔 그들에게 논쟁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레더와 되니츠는 오랫동안 해군 내에서 경쟁 관계에 있었다. 슈판다우 감옥에서도 그들의 경쟁 심리는 여전했다. 그들의 논쟁은 단순히 해군 전략에 대한 의견 차이를 넘어, 누가 더 '위대한 제독'인지, 누가 더 '옳았는지'를 가리는 자존심 싸움처럼 보이기도 했다."
되니츠는 독감 걸려서 병상 있을때도 문병 온 레더에게 논쟁을 걸었다.
"어느 날 되니츠가 독감으로 아파 의무실에 있을 때였다. 레더가 문병을 왔는데, 병상에 누워있는 되니츠가 '만약 당신이 전함 건조를 고집하지 않았더라면...'이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레더는 '아픈 사람과는 논쟁하지 않겠네'라며 발걸음을 돌렸다 한다."
그외 슈판다우 교도소 내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논쟁에 대한 적은 기록들.
슈판다우 도서관 담당자의 증언
"두 사람은 해군 관련 책을 두고도 다퉜다. 되니츠가 U보트 작전에 관한 책을 빌려가면 레더는 '그걸 읽어서 뭘 하겠다는 건가, 이미 늦지 않았나?'라고 비꼬았고, 레더가 대형 함정 전술 책을 보면 되니츠가 '실패한 전략을 아직도 연구하시나?'라고 했다."
나치 장관이었던 풍크의 회고
"식사 시간이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게 두 해군 제독의 논쟁이었다. 되니츠가 '비스마르크호 한 척 값이면...'이라고 입을 열면 우리는 모두 한숨을 쉬었다. 또 시작이구나 하고."
간수 맥도널드의 증언
"체스를 두면서도 이 둘은 논쟁을 멈추지 않았다. 되니츠가 '체스의 폰처럼, 숫자가 중요한 법이지'라고 하면 레더는 '퀸 하나가 폰 아홉 개의 가치가 있다는 걸 모르시나'라고 받아쳤다."
다른 간수 증언
"두 노인 (레더와 되니츠)은 정원에서 산책할 때면 항상 언쟁을 벌였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자주 들었습니다. 서로 몹시 화가 난 것처럼 보였죠. 아마도 과거의 일이나 전쟁에 대한 이야기였을 겁니다."
슈판다우 소장 기록
수감자 레더와 되니츠는 최근 들어 언어적 다툼이 잦아지고 있으며, 이는 감옥 내 긴장감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산책 시간이나 공동 활동 시간에 두 수감자 간의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슈판다우 역사 연구가의 결론
"슈판다우 감옥에서 레더와 되니츠는 해군 전략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슈페어의 일기와 컬버하우스의 기록은 이러한 논쟁이 감옥 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음을 시사한다. 두 제독은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며, 자신의 전략적 선택을 정당화하려 했고, 이는 감옥의 무료함과 고립감 속에서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감옥 갇혀서 시간 많아지니 그런 것도 별 개의치 않아지고
논쟁 할때 만큼은 무척 진지했던거 같다
2차 대전기 유보트는 많이 활약했지만 후반기엔 사망자 비율이 소련군 독일군 연합군 다 포함해서 1위였고
레더가 주장한 강력한 수상함대는 1945년에야 건조가 끝날걸로 예상되었는데
2차 세계 대전은 1939년에 시작해서 1945년에 끝났다.
끝.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ome&no=1264306
슈판다우 깜빵에 갇힌 되니츠와 레더의 해군 논쟁에리히 레더는 독일 해군 최고참이자2차 대전 시기 독일 해군을 초기에 총 지휘한 인물로강력한 수상함대 건조해서 영국과 맞서자고 주장했음이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종신형 선고받고1947년부터 나치 전범만 수용하는 슈판다우gall.dcinside.com
;;;; 뭐 근데 결국 되니츠도 대형함들의 필요성은 인정하진 않았었나?
히틀러가 노발대발하면서 전함들 해체엔딩 하려고 했을때 보존시킨 건 맞는데... 그것 뿐이니까
@투하체프 하기사...
재미있는데숭 - dc App
이거 완죤 독일판 노친네들 탑골공원 현피 ㅋㅋㅋ
밥먹을때 무기이야기 입갤 ㅅㅂㅋㅋㅋ -"시진핑애비없음"
내가 되니츠학파는 아니지만 대규모 수상함대는 이제 끝물인게 맞지 ㅇㅇ..
유보트전 초창기에 영국 호송선단은 마치 안경 벗겨진 근시환자마냥 예술적으로 두들겨 맞았지 난 되니츠쪽이 쪼오오오금 맞다고 봄. 래더의 계획의 성공 확률은 0%였으니
그 와중에 아플때는 잘 물러가주네 씹ㅋㅋㅋㅋㅋ
소, 솔직히 문병 온 사람에게 이니시를 건 놈이 미친거라고 생각해요
독일 망하기 직전에 최종 유보트 4~5척 나왔던 걸로 알고 있는데 차라리 수상함대 유지하기 위해 궁리할 시간에 유보트 연구에 집중해서 그 최종판 유보트를 더 빨리 양산했더라면 영국과 미국 대서양 무역을 거의 전쟁 끝나기 직전까지 궁지에 몰아넣지 않았을까
문제는 그 type 21 생산에 5천대 전차 생산 금액을 투자한지라 ㅋㅋㅋㅋㅋ
https://nationalinterest.org/blog/reboot/why-nazi-germanys-type-xxi-submarines-couldnt-win-world-war-ii-196879
해당 글에서도 나오는 이야기 이지만 type21 유보트 결함이 워낙 많아서 일찍 생산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 시점이 1943년 부터는 크게 전쟁에 영향을 주기에는 부족한 무기라고 봐야됨
이거 따지고 보면 개전을 땡긴 히틀러 잘못이 큰데 그 이야긴 죽어도 안 했나보네 ㅋㅋㅋㅋ
차라리 한줌 항모 만들어서 공군 커버아래에 북해에서 내선작전하겠다 하는 소리였으면 레더의 수상함대 전략은 그랬구나 했을텐데 전함 ㅋㅋ h급 뭐 h45가 나온다한들 뭘할수 있었을까 태평양전쟁 개전하고 본격적으로 항모시대 열리기전 비스마르크 레이드라는 전함시대의 황혼을 느껴서 그런건가 45년에 전함 소리하고있네 ㅋㅋ
어떻게 보면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달라진 해군 판도를 몰랐으니까 그때까지도 주장한게 아닐까란 생각도 듬 ㅋㅋㅋ
결론: 국력딸리면 잠수함이고 수상함이고 다 쌈싸먹히게된다
재밌노 ㅋㅋㅋㅋ
군붕이잖아
솔직히 되니츠가 그놈의 발터엔진만 일찍 포기했어도 21형이 진작에 대량으로 전투 투입고도 남았다는 나쁜말 ㄴㄴ
이 또한 혼파망의 독일 무기 개발사 읍읍
어찌보면 둘다 맞는 말인게 안타까운 사실임 독일 수상함대가 있었을땐 영국은 항상 함대결전을 염두해두고 해군을 뭉쳐서 작전하거나 호송선단을 결성해서 통상항로의 안전에 많은 자원과 시간을 투자해야 했음 특히 독일 전함들이 살아있을땐 영국은 자국 홈플릿들을 다른곳에 원정보내기가 매우 힘들었고 태평양 전역이나 지중해 전역이 높은 확률로 열세 내지 백중세의 상태에 놓여있어야 했음 실제로 독일 해군이 무너진 시점에서야 영국 홈플릿에 있던 함대들이 흩어져서 지중해와 태평양에 증원이 가능했음 즉 영국함대 입장에서는 독일 수상함들을 신경쓰지 않으면 수상함들이 돌아다니며 유격전을 벌여대는걸 가만히 봐야 한다는 것임 이는 절대로 용납 될 수 없었음
둘 다 맞는말가자고 싸우나 답이 나올리가없긴함
비스마르크 한대면 u보트가 대체 몇대....
다른 셈법으로는 U보트 한 척 가격이면 전차가 대체 몇 대냐! 인지라 ㅋㅋㅋ
나름대로 교도소 생활 버티는 그들만의 UFC 섞인 WWE 느낌이네 ㅋㅋㅋㅋ 저러다 한명 죽었으면 남은 하나 존나 쓸쓸해했을듯
출소하고는 별말 없었나?
되니츠가 레더 사망 후 장례식에서 조사 낭독함
하도 투닥거려서 정들었나보네
항모논쟁은 정상이었네.
종합하면 일단 U보트 위주로 하되 현존함대 전략 펼 수상함대 전력은 충원하면서 그라프 체펠린같은 항모 전단으로 삼대 구성을 변화시켜 해상 작전을 짰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 전에 히틀러를 죽이고 카게무샤로 휘틀러를 세웠어야 함 저 양반들은 자기네 조국이 일인독재 국가로 돌아가게 된게 무슨 의미인지를 빼먹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