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운용했지만, 정비 상태만큼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초대함장은 “겉은 낡았어도 속은 20년은 더 탈 만큼 단단하다”고 했다. 실제로 잠수함 내부엔 마지막 항해임에도 먼지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승조원들의 세심한 손길 덕에 장보고함은 나이를 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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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함 마지막 항해 일지마지막도 처음처럼…34년 늘 그랬듯이 해치 닫히자 말수 줄였다 눈빛만 오갔다 34년 견딘 무게 장비 ‘이상 소음’ 듣기 위해 외부와 단절, 사생활 없지만 묵직한 함체, 물 가르자 익숙한 손놀림 흔들림 없어 진짜 라스트 크루 겉은 낡았어도 속은 20년 더 탈 수 있는데… 단 1초 오차 없이 입항 명예롭게 마지막 임무 완수다음 달 퇴역을 앞둔 대한민국 첫 잠수함 장보고함이 19일 마지막 항해에 나섰다. 34년 운용을 끝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기 직전, 국방일보가 외부인의 접근이 극도로 제한된 잠수함에 동승해 그 순간을 기록했다.  글=조수연/사진=조용학 기자  진해군항으로 돌아온 장보고함 승조원이 수직사다리를 타고 올라 마지막 입항을 준비하고 있다.장보고함 승조원 맹세나는 장보고 대사의 혼이 깃든 한국 해군 1번 잠수함 장보고함 승조원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장보고함의 발전이 곧 잠수함부대의 발전이요, 잠수함부대의 발전이 곧 대양해군 건설의 첩경임을 자각하여 전술·전기 연마를 생활화하고 솔선수범하며 상경하애(上敬下愛)와 인화단결(人和團結)로 굳게 뭉쳐 국가와 해군과 잠수함부대에 충성하는 장보고함 승조원이 된다.해치(승강구)를 열고 철제 사다리 이용해 함으로 내려가자마자 휴대전화 신호가 끊겼다. 극도로 좁은 구조에 몸이 잔뜩 움츠러들었다.장보고함의 마지막 항해는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시작됐다. 승조원들은 말수조차 줄인다. 장비의 ‘이상 소음’을 먼저 듣기 위해서다. 체취와 음식 냄새가 섞여 환기되지 않는 공기, 누구 하나 감기라도 걸리면 순식간에 퍼지는 밀폐된 공간, 사생활이란 없는 곳. 장보고함이 수십 년 버텨온 일상의 무게다. 출항하자 내부 공기는 달라졌다. 승조원들은 각자 자리에서 장비를 운용하며 함을 천천히, 정확하게 움직였다. 마지막 항해라지만 손놀림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묵직한 함체가 물을 가르자 조타실에서 단정한 교신이 쉼 없이 오갔다. 하태경(상사) 전탐장은 너덜너덜해진 항해 일지를 펼쳐 빽빽이 글씨를 적어 내렸다. 표정엔 장보고함을 보내야 하는 아쉬움과 마지막까지 ‘정확히 운용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동시에 비쳤다.    지난 19일 항해를 끝으로 34년의 대한민국 영해 수호 임무를 마친 장보고함. 함수로 향하자 분위기는 또 달라졌다. 커피를 종이컵에 나눠 담아 돌리고, “마지막 항해를 위하여”란 건배사가 오갔다. 안병구(예비역 해군준장) 초대함장은 마스트에서 내려오며 “34년 젊어진 느낌”이라고 했다. “처음 운용할 땐 모든 게 생소했는데… 유지를 잘해준 후배들에게 고맙습니다.” 인수 무장관·주임원사·내연부사관도 모처럼 한데 모였다. 청춘을 바친 잠수함과의 재회에 벅차오른 선배들은 잠수함 특유의 문화에서 비롯된 추억들을 쏟아냈다. 잠수함 생활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벌였던 ‘수염 기르기 대회’에서 매번 1등이던 주임원사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당시 주임원사였던 신영태 예비역 해군원사는 “여긴 사생활이라는 게 거의 없다”며 “그래도 제가 할 일은 승조원들 얘기 들어주고, 해결 안 되는 건 함장님께 전하는 거였다”고 회상했다. 안 초대함장이 “함장이 편하면 나머지 승조원이 불편하고, 함장이 불편해야 나머지가 편하다”며 웃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침대 하나를 두세 명이 돌려 쓰는 건 기본이다. 180㎝ 길이의 침대라 키가 큰 사람은 머리맡에 구멍을 뚫어 썼다. 한 승조원이 “잠수함 타려면 성격이 좋아야 한다kookbang.dema.mil.kr




관리를 잘했다고
20년 더 가자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