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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책에서 나오는데

해방 이후 소련군정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각 공장과 광산들의 일본인 직원들을 쫒아내고 조선인들에게 운영을 맡겼음

근데 막상 해방 이전까지 주요 기술이랑 노하우는 소수의 일본인들이 틀어쥐고 있었다 보니 조선인 기술자들이 운영을 맡자 온갖 개찐빠가 다 터지면서 제대로 굴리질 못함

소련 고문단이 대신 들어갔으면 또 모르겠는데 얘네는 또 수가 ㅈㄴ 적어서 별 도움이 안 됐다나.

그래서 안되겠다 싶었던 군정당국과 인민위원회는 1946년 초 일본인 기술자들의 직장 복귀 명령을 내려 노하우를 전수하라 지시했음.

일본인들을 바로 쫒아낸 남쪽의 미군정당국과 달리 북쪽에서는 아직 대부분의 일본인들을 억류 중이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음

어쨌든 일본인 기술자들은 생각보다 성심성의껏 공장 재건을 도와주고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함.

대표적으로 닛치쓰 흥남공장의 일본인 직원들은 자진해서 조선인들에게 기술을 전수해주겠다고 나섰고 당국이 이를 승인하면서 흥남기술원양성소를 설립함

이 학교는 1946년 9월 흥남공업기술전문학교가 되었고 15명의 일본인 교사가 가르쳤음.

이 일본인들은 1946년 12월부터 귀환 허가를 받으며 서서히 귀국, 1948년 경 대부분 철수함. 시베리아 끌려간 양반들 빼고

어쨌든 이렇게 공업 인재풀을 마련한 북한은 부족하게나마 공장지대를 재가동했지만

1950년 미군의 폭격과 유엔군의 진격으로 65호 공장을 비롯한 4개 공장 빼고 대부분이 개박살남






출처:
위 책
한국전쟁 시기 북한의 전시생산과 중·소의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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