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도 만만찮더만
1. 여러 이유로 6.25 전에도 공장 가동률이 너무 낮았음. 핵심 군수공장인 65호 공장만 해도 49년 10월 가서야 생산 제대로 시작함
2. 북한이 전시경제로 전환한 건 전쟁 전이 아니라 개전 후에 유엔군이 본격적으로 튀어오는 꼴 보고 나서임
3. 전시체제로 전환했어도 미국 폭격과 유엔군 북진으로 설비를 대거 망실함. 성공적으로 철수한 공장은 딱 4개뿐이었음. 이 때문에 안 그래도 저조한 공업생산량이 전전의 10%로 감소
4. 따라서 북한의 전쟁준비와 수행에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은 소련과 중국의 막대한 지원이지, 일제가 남긴 산업시설이 아님
5. 산업체들은 대부분 전후 공산권의 지원으로 복구. 대부분의 설비는 소련이 지원했지만 체코나 폴란드, 헝가리도 도왔다 함. 특히 폴란드는 고문단을 보내서 탄광 복구를 도왔다나
주 출처
한국전쟁 시기 북한의 전시생산과 중·소의 지원
그 외 등등
- dc official App
일단 우리보단 유리하긴 했을거라고들 하더라. 일제 정책상 공업시설은 대부분 북쪽에 있었으니.
그건 그렇긴 함 남쪽은 경인공업지대랑 부산 영도 쪽 외엔 정말 뭐가 없었으니 - dc App
@HK885 발전소도 뭐, 수력 한정이지만 운암 발전소 빼면 거의 없다시피 했을걸?
@LNER 그래서 미국 항공모함 발전기로 부족분 충당했을 지경이라 하니 - dc App
@HK885 용문산 전투가 중요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지. 거기서 승리한 덕분에 화천댐을 탈환할 수 있었으니.
원래도 소련 지원으로 준비했단게 정설아닌사
ㅇㅇ 근데 일본 연구자들 중에 북한지역에 남은 일제 공업시설의 역할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음. 출처로 걸어놓은 그 논문에서 그걸 반박하더라 - dc App
공장 부품 소련에게 파는데 급급했다는 말도 있고..
이건 만주가 특히 심했던듯 김홍일 장군 자서전 보니까 존나 골때리는 에피 많더라 - dc App
애당초 45년 8월 이후부터 진주한 소련군이 조직적으로 산업체 철거해서 자국으로 옮기지 않았나, 만주에서만 해도 일본군 포로 동원해서 알뜰살뜰 다 뜯어갔던데
북한 쪽은 그렇게까지 뜯어가진 않은듯 적어도 일본인 연구자들 연구에 따르면 그럼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