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는 뮌헨 맥주홀 폭동 직전까지 룸펜부르주아지였음.

앞에서는 가난한 서민 코스프레를 했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게 있어서 진짜 가난했던 적은 없음. 시쳇말로 그냥 쉬었음이었음.

그의 정치적 자산은 핵이빨, 전상자, 철십자 훈장 뿐이었음.

그랬다가 뮌헨 폭동 실패 후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반프로이센, 반공 성향의 바이에른 주 정부 및 주 법원의 비호 아래 감옥에서 유유자적하며 살다 나옴.

물론 폭동 실패 후 공중분해된 당 조직을 재건한 건 그의 역량이긴 했음. (그렇다고 해서 히틀러가 조직화를 잘하는 당 실무형 리더는 절대 아니었음. 오히려 그 반대였지.)

그러다 후겐베르크 같은 바이마르 공화국 내 일부 반동 세력들이 히틀러와 그의 당을 눈여겨 보고 지원해주기 시작했음. 이 과정에서 히틀러의 스탠스 일면이 극적으로 변하는데 원래 반유대주의 선상에서 반자본가 성향을 갖고 있었다 이 시점부터 자본가들과 야합하는 노선을 택함. (물론 이 때 야합한 자본가들은 득을 못 봤음. 히틀러에게 크게 삥뜯기기도 했고 삥뜯긴 대가로 받긴 했는데 패전 후 배로 토했기 때문에)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히틀러와 그의 세력은 길거리에서 깽판짓을 할 행동대원들을 늘였고, 거리에서의 정치테러로 주가를 날리게 됨. 에른스트 텔만의 공산당과 쌍두마차로.

그러다 다들 잘 아는 경제 대공황으로 독일이 휘청거리면서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지세가 꺾이고 이 틈을 타서 공산당과 노동자당이 약진하며 원내 거대야당으로 입성하게 됨.

근데 여기서 히틀러는 자충수를 두게 됨.

공산당과 함께 쌍으로 법을 이용해 당시 사민당 내각을 비토하고 의회 총사퇴 및 총선거 깽판짓을 반복한 거임.

유권자들은 대안 세력이 똥꼬쑈라도 하며 확실히 뭔가를 보여주길 기대했는데 의회 해산 같은 깽판만 치니까 노동자당의 지지세가 박스권에 머물게 되고 급기야는 득표율 감소로 이어지게 됨. 이게 반복 되었으면 히틀러는 에른스트 텔만과 함께 트롤 정도로 기록되었을지도 모름.

사실 이 때도 히틀러는 훗날의 버릇을 그대로 보여줘서 따갚되 정신을 일관하다 보니 이 때 결과를 안 보여주면 집권하기 전에 채권자들한테 뚜드려맞고 브란덴부르크 개선문에 효수되었을지도 모름.

이랬던 그를 구해준 게 프리프 파펜임.

이후의 일은 다들 알다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