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은 성립 초기 제정 러시아 시절 물려받은 한줌 같은 공업 자산, 그리고 내전으로 개발살난 국토를 갖고 있었음. 이를 가지고 소련은 몇 가지 과업을 수행해야 했음. 그것도 한꺼번에.
1. 2차 산업을 빠른 속도로 육성해야 함.
2. 1차 산업 특히 농축산업의 집산화를 해야 함.
3. 1과 2를 바탕으로 노농적군을 무장하고 기계화해야 함.
결과적으로 1과 2는 동시에 속도전으로 진행됨. 아니 그렇게 해야 했음.
소련이 중공업 개발 5개년을 수행하면서 좋든 싫든 자본과 자원을 투입해야 했음. 사람은 인민을 갈아 넣고 필요한 자원은 어찌되었든 우랄 산맥에서 캐온다 쳐도 필요한 자본과 기술은 소련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었음.
??? : 쩐주를 찾으셨다구요?
그걸 해결해 준 게 미국이었음.
미국은 소련에게 세 가지를 줬음. 자본, 컨베이어, 트랙터였음.
이를 바탕으로 소련은 기존의 산업 단지를 확장할 뿐만 아니라 스탈린그라드를 비롯하여 우랄산맥 서쪽 주요 도시, 그리고 시베리아 주요 거점에도 산업 단지를 조성할 수 있었음.
그리고 이 산업단지에서는 면허 생산한 트랙터를 기합차게 생산해서 집산화된 농업 단지 즉 집단농장/콜호즈에 분배되어 농업생산성을 높아지게 되었음.
아니 높아지길 바랐음.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돌아가지 않았음.
그들의 노력과 바람과는 달리 처음부터 트랙터 생산 케파가 확보되지 않았고 농업 집산화 과정에서 일어난 혼란과 맞물려서 오히려 농업 생산성이 일시적으로 퇴보하게 됨. 근데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있었음.
??? : 돈은 주셔야지?
미국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만큼 되돌려줘야 했고 소련 입장에서 내주기 가장 만만한 게 우크라이나산 밀이었음. 이 때문에 농업 집산화로 인한 혼란+트랙터와 비료 부족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쩐주를 위한 공출이 트리플 악셀을 치면서 우크라이나를 대표로 유럽 러시아 전역에는 식량 부족에 시달리게 됨. 이게 홀로도모르임.
큰 틀에서 급속한 공업화 드라이브를 건 나라들은 어떤 식으로든 농축산업 종사 집단을 착취하는 구조를 가져가게 되었음. 소련이 그랬고 일본이 그랬고 우리도 그랬음.
다만 소련은 이 피바다를 딛고 공업화에 성공했고 이걸 바탕으로 히틀러와 영혼을 건 맞다이에서 스트레이트 블로우를 연달아 쳐맞고도 살아서 상대를 갈아버릴 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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