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잠수함의 봉쇄는 실로 치명적이었다.
일본군은 호송선단 체계를 마련하기 시작했을 뿐이며 수송선이 부족했는데,
이것은 일본 해군이 주력함에만 자원을 몰빵했던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도쿄의 대본영에게 손절당한 현지 일본군들에게 항복이란 허용되지 않았다.
그저 보급도, 원군도 기대하지 말고 "자급자족"하라는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명령이 내려졌을 뿐이다.
전사한 일본군 174만 중 60%이상은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간 것으로 추산된다.
자연스럽게 일본군 병사들은 현지인들의 식량을 닥치는 대로 빼앗았지만
시골 사람들은 어떻게든 연명할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을 용케도 숨겨두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상황이 더 악화되었고, 그만큼 강제노동자들과 연합군 포로들의 고통도 더해졌다.
결국 일본군 병사들은 물론이고 장교들까지도 인육을 식량으로 여기게 되었다.
일명 "사냥꾼들"은 미군과 호주군 포로를 의미하는 "백돼지",
현지 동남아 주민들과 노예노동자들을 의미하는 "흑돼지"들을 수없이 사냥해, 살과 뇌, 간을 요리해 먹어치웠다.
지휘관들이 아군의 시체만은 먹지 말라고 했지만 이들은 듣지 않았으며, 시체만 먹지도 않았다.
이따금씩 인육을 먹기를 거부하는 동료 병사를 고르거나, 다른 부대의 병사를 사냥했다.
필리핀에 고립된 일본군 병사들은 훗날 "우리를 정말로 겁에 질리게 했던 건 필리핀 게릴라들이 아니라,
바로 아군 병사들이었다."라고 고백했다.
- 앤터니 비버 "제 2차 세계대전"中
조선인 징용자들이나 위안부고기는 고래고기라고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