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음의 정체를 알아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관측창에 집중하고 있던 눈이 따끔따끔하게 아프다.
그 모두가 후방의 야포들이 쏘아준 조명탄이었다. 하늘 위로 막연히 떠올랐다가, 낙하산이 퍼지자 급하게 타오르는 소리를 내며 빛을 뿜어대었다.
벗어두고 있던 야전용 무전기가 지이잉, 하며 울렸다.
[여기는 바라티어 리더. 슈바르츠의 명령이다. 전진, 전진!]
칼칼한 소대장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울렸다.
리안은 쿠펠 속으로 몸을 숨기고서, 운전병 제이크의 등을 툭 찼다.
”밟아!“
등을 걷어차인 제이크는 리안을 불만스런 눈빛으로 살짝 흘겨보고는 전차 조종용 스틱을 앞으로 꾹 눌렀다.
으르릉, 하는 호랑이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엔진소리가 울려 퍼진다.
리안의 전차를 시작으로, 다른 전차들의 엔진들도 하나씩 용트름을 하기 시작했다.
위압적인 소리가 그들이 있는 언덕을 말 그대로 울렸다. 아마 앞으로 전진하는데만 여념이 없던 연합왕국군은 상상도 못한 옆구리 치기에 놀라 자빠질 것이다.
전차가 취이익, 하며 증기를 내뿜고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리안은 더욱 격렬해진 전차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꼈다.
[쐐기 대형으로, 간격 잘 유지하고, 고폭탄 장전해 놔! 우리 상대는 보병이지 전차가 아니다! 바라티어 리더, 이상!]
기갑학교를 지지난주에 졸업한 소대장은 쏘가리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아주 열성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이미 몸으로 긁히고 베이며 파괴된 전차를 탈출하며 그런 사실을 다 알고 있다가 책으로 기갑전을 배운 소위에게 훈수를 들은 리안은 볼을 살짝 긁고는, 관측 창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당황하고 있는 적 보병들이 한무리 보였다. 모두 소총을 들고 있었다. 수류탄을 던지려고 하는 병사가 몇 보였지만, 그 역시 소총만큼이나 씨알도 안먹힐 것이다. 통상 수류탄은 커녕 수류탄을 둘둘 말아놓은 집속 수류탄을 던져도 왠만하면 전차는 격파되지 않는다.
안심하고, 그저 죽이기만 하면 되었다.
”칼! 1시 방향, 거리 1천!“
”조준 끝!“
”발포!“
- 펑!
무거운 고폭탄 특유의 묵직한 포성, 포탄이 날아가면서 남기는 빛줄기, 반동으로 인해 거칠게 흔들리는 차체.
그리고 폭발.
소총이라도 쏘아보며 저항하던 보병 몇이 불길에 삼켜진다.
제대로 삼켜진 서넛은 그대로 조각이 나버리고, 어설프게 삼켜진 몇은 몸에 불이 붙거나 어딘가가 떨어져 나간 채로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리안의 전차를 시작으로, 소대의 다른 전차들이 불을 뿜었다. 불길을 벗어난 사람들이 불길에 삼켜졌고, 살조각이 이리저리 튀었다.
지휘자가 살아있는건지 대열을 유지하고 질서정연하게 도망을 치고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전투능력을 거의 잃었다.
”장전 완료!“
장전수, 베르스가 말했다.
잠깐 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방금전에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전차를 후속하던, 그리고 후퇴하는 적들의 먹음직스런 뒷태를 보며 입맛을 다시던 보병들이 돌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군 오사는 아무래도 사절하고 싶다.
”대기, 대기! 우리쪽 애들이 나가고 있어. 동축 기관총으로 정리한다!\"
리안이 명령했다.
[여기 바라티어 리더, 적으로 확신되는 놈들만 쏴라! 어차피 옆에서 궤도 굴러가는 소리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우린 우리 역할을 다 하고 있다!]
리안과 마찬가지로 보병들을 의식한 소대장이 명령했다. 리안은 이미 알아서 명령한 사실을 재확인하게 해주는 어린 소대장에게 새삼 짜증을 느꼈다.
\"카피, 바라티어 리더.\"
리안이 짤막하게 대답해주고는 관측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쿠펠 위로 올라가시는건 어떻겠습니까? 시야각이 확보가 잘 안되는데..\"
포병용 관측기에 눈을 꼭 대고, 동축기관총의 페달을 밟으며 무력한 보병들을 요리하고 있던 칼이 말했다. 근 오분간 그가 죽인 연합왕국 병사가 족히 열은 되었다.
\"너 내 머리에 구멍나는거 보고 싶냐? 그냥 내가 말하라는 대로만 해.\"
리안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 관측창 밖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하나 눈에 들어오는게 있었다.
\"2시 방향, 거리 천오백. 대전차총 진지나 기관총 진지로 추정. 모래 주머니 쌓아놓은거 같으니까 동축 말고 주포 쏴! 고폭탄으로!\"
\"쫄기는... 장전 완료!\"
\"조준 완료!\"
리안은 입을 살짝 비틀었다.
\"쏴!\"
예의 섬광과 진동, 그리고 폭음. 흙과 진지의 잔해들이 높이 튀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파괴 확인!\"
\"... 이거 너무 싱거운데?\"
리안이 영 이상하다는듯 입맛을 다셨다.
[... 여기 오메틱 02! 오메틱 리더.. 오메틱 리더 피격! 격파로 추정! 맙소사, 적이... 전차대다! 전차대!]
옆에서 섬광이 번뜩, 하더니 예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큰 폭음이 들렸다. 뭔가 했더니, 전차가 피격되어 탄약고가 덩달아 유폭된 것이다.
오메틱 02는 그 무전을 날린 후에도 계속 떠들어 대었다.
[적의 역습이다! 우린 당했어! 이건 함정이라고! 난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닥쳐라, 오메틱 02! 정신차려!]
오랜만에 들어보는 목소리. 중대장이다.
[파르스 커맨더가 각 소대 리더에게, 뭔가 보이는게 있나!]
[여기 바라티어 리더! 3시 방향! 적 전차대 출현 확인! 3시 방향! 코멧! 코멧이다!]
[뭐? 젠장. 여기 파르스 커맨더. 바라티어, 오메틱, 파르스는 티타임 각도로 전환하고 철갑탄 장전! 3시 방향이다! 적 보병들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전방 기총이랑 동축 기관총으로 제압만 하면서 적 전차대의 제압에 집중한다. 자, 명심해! 뭘 하건 적들은 그래봐야 코멧이다. 각도만 잘 잡으면 이정도 거리에선 씨알도 안먹혀! 한두대 맞는다고 쫄지말고 쏴! 그리고 위고는 후속하며 적 보병대의 제압에 집중해라! 다만 필요시 적 전차에도 제압을 위해 사격하도록!]
[들었지? 바라티아 전원, 철갑탄 장전! 거리 잘 유지하고, 뒤 따이지 않도록 조심!]
\"바라티어 03, 확인!\"
리안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흘긋 흘긋 자신을 바라보는 승무원들의 눈빛에 짜증이 섞여 있다. 아까의 입방정 탓이다.
\"4시 방향으로 코멧 확인! 우리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베르스가 조준장치로 앞을 확인하고 말했다.
\"확인! 4시 방향, 거리 2천! 너무 먼데... 일단 쏴!\"
덜컹, 하며 전차의 동체가 흔들린다.
목적했던 코멧 전차가 조금 뒤, 불길에 휩싸인다. 하지만 격파되지는 않는다. 그정도야 아무래도 괜찮다는듯, 잠깐 멈칫하더니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고폭탄을 쏘았던 탓이다. 맞추기야 측면의 취약한 부분을 맞췄다만, 고폭탄은 폭발하되 관통하지는 않는다. 철로 둘러싸인 전차에게 유효한 타격을 주기는 어렵다. 적어도 이 전차에 달린 50mm포의 서너배 구경은 되어야 고폭탄으로도 코멧 전차를 격파할 수 있을 것이었다.
\"... 젠장! 철갑탄으로 바꾸지 않고 뭐했어!\"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전차를 본 리안이 소리를 질렀다.
\"명령이 없었잖습니까!\"
베르스가 항의했다. 그 나름으로는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평소의 리안은 네 판단따윈 아무래도 괜찮으니 하라는대로만 하라고 말하고 다녔었던 것이다.
\"그래, 내 실수다! 전차 조준하라고 했는데도 철갑탄으로 갈아끼울 눈치가 없는 사람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리안의 침이 톡 튀었다. 베르스는 이를 뿌득 갈며, 억센 손짓으로 철갑탄을 장전했다.
\"시끄러워요! 장전 완료! \'철갑탄\' 장전 완료!\"
베르스가 철갑탄에 강세를 주며 대답했다.
\"쏴!\"
끝나고 보자, 라는 말을 웅얼거리며 발포 명령을 내렸다.
강한 섬광이 이어졌다. 날카로운 불빛. 그러나, 허무한 각도로 튕겨나가버린다.
\"뭐야?\"
리안이 당황해서 말했다.
\"씨알도 안먹힙니다! 코멧 맞긴 합니까?\"
신형 전차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베르스가 소리를 질렀다.
\"씨발, 소리 지르지 마! 신경쓰이니까! 빨리 장전해! 차체를 노려, 차체를! 방금전은 포방패에 맞았겠지! 일단 계속 조준하고 있고!\"
리안은 장전완료, 라는 말이 들릴때까지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러나 그 결심은 곧 무너져버리고야 말았다.
\"젠장! 탄피가 끼었습니다!\"
리안은 조그맣게 씨발, 이라고 욕설을 내뱉었다.
\"뒤로 빼, 일단 뒤로... 큭!\"
운전수용 관측창 사이를 강한 섬광이 흝고 지나갔고, 포의 반동과는 차원이 다르게 전차가 격하게 흔들렸다.
\"어디에 맞았어?!\"
\"차체 전면요! 뚫리진 않았습니다!\"
리안은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아직 못뺐나?\"
베르스는 주포의 후측을 거의 부서지도록 두들기고 있었다.
\"좀 도와주십쇼! 안빠집니다!\"
베르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리안은 몇마디 욕설을 더 중얼거리며 몸을 굽혔다. 그리고 베르스가 당기라고 말하는 쪽을 당겼다.
\"계속 뒤로 빠져!\"
앞에서 얼쩡대다가 속절없이 격파당하는것보단, 뒤로 잠깐 빠지더라도 멀쩡한 전력을 찾아서 돌아오는게 전술적으로도 훨씬 낫다. 제이크는 리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전차를 계속 뒤로 몰았다.
[여기 바라티어 리더! 왜 뒤에서 빠지고 있나!]
\"바라티어 03, 탄피가 끼었습니다! 조금 뒤에 복귀하겠습니다!\"
[뭐? 알았다. 하지만 빨리 복귀하도록! 적은 낮게 잡아도 우리랑 동수다!]
리안은 누가 그걸 몰라, 라고 중얼거리며 무전을 끊었다.
\"젠장, 좀, 좀, 좀!\"
베르스는 탄피 배출 페달을 누르다 못해 두드리고 있었다. 페달이라고는 해도 금속덩어리라, 그의 손은 보호용 장갑을 끼고 있었음에도 피로 물들었다.
한 일분정도 숨막히도록 용을 쓴 후에야, 통 - 하는 소리를 내며 겨우 탄피가 빠져나왔다.
\"아뜨뜨!\"
달아오른 탄피에 팔뚝을 살짝 데인 리안이 기겁했다.
\"망할 놈의 주포! 개 같은 병기국! 그리고 이 씨발놈의 전쟁!\"
베르스가 철갑탄을 장전하며, 거의 울듯이 외쳤다.
\"닥쳐! 전차, 전진!\"
\"알았습니다아!\"
전차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반기기라도 하듯, 예광탄으로 이루어진 섬광이 잔뜩 쏟아졌다.
매우 센 불에서 투박하게 콩을 볶는듯한 소리가 난다.
\"2시 방향, 거리 구백! 포탑 살짝 옆으로 돌리고 있는 놈, 차체 노려서!\"
리안의 목소리 끝이 살짝 갈라졌다. 그리고 칼은 그의 명령을 듣고서, 포탑 조종용 핸들을 조작했다.
약간의 틈을 두고서, 칼이 조준을 완료했다. 조준경이 적 전차의 동체로 꽉 차있다. 씩 웃으며, 리안에게 보고한다.
\"조준 완료!\"
\"쏴!\"
이번은 조금 가벼운 반동이다. 고폭탄과는 조금 다른 푸른빛의 섬광이 하늘을 흝었고, 목표에 직격했다.
엔진으로 추정되는 차체 후면에서 불이 치솟고, 운이 좋은 몇이 차체에서 급하게 뛰어내렸다. 몸을 숨겨보려 하지만, 그들을 겨눈 무기는 리안의 전차에만 있는것이 아니었다. 보병의 것인지 전차의 것인지 모를 총알 수십개가 그들의 몸을 가볍게 꿰뚫고 지나갔다.
\"그 다음! 마찬가지로 두시 방향! 계속 멈춰있는 놈. 아마도 궤도가 망가진거 같은데...\"
그가 목표했던 전차가 불길에 갑작스럽게 휩싸이며 폭발해버린 탓에, 리안의 말은 잠깐 끊겼다. 탄약 유폭 탓인지, 떨어져 나간 포탑이 제법 높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가 떨어진다.
\"이미 격파되었습니다!\"
\"나도 알아! 제이크! 한시 방향으로 차체 돌리고 티타임 각도 유지해. 그리고 베르스, 연막때문에 잘 안보이니까 일단 대기!\"
리안은 늦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잔뜩 흐르는 땀방울을 훔쳤다.
[... 여기 바라티어 02! 바라티어 리더 피격 확인! 격파! 탈출중인 생존자 전무!]
비보. 소대장의 전차가 격파당했다. 재수 없는 쏘가리라고 해도 대장은 대장. 리안은 이쯤에서 욕설을 한번 더 내뱉었다. 다리가 더 심하게 떨렸다.
\"야, 우리 소대에서 소대장 다음으로 선임자가 누구냐?\"
\"전차장님이신데요!\"
리안은 애꿎은 포탑 장갑판을 내리쳤다.
\"시바알... 여기 바라티어 03! 파르스 커맨더에게, 바라티어 리더 격파! 이쪽에서 지휘권 이양받음!\"
[확인했다. 말했던 대로 바라티어는 적 전차대의 제압에 집중하도록!]
\"송신 완... 큭!\"
거친 진동이 전차를 또 한번 흔든다. 피격되었다.
\"뚫린데 없나?\"
리안이 물었다.
\"차체는 이상무!\"
자신의 좌우를 둘러보고 뚫린 데나 패인 데가 없는 것을 확인한 베르스가 대답했다.
\"전면 포탑도 이상 없습니다! 이쪽에 피격되지 않았어요!\"
칼이 관측기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궤도도 이상 무! 잘 굴러갑니다!\"
전차의 가속기를 밟아 살짝 앞으로 전진시켜본 제이크가 대답했다.
\"좋아, 그럼 그대로 앞으로 전진! 그리고 저기 코멧, 2시 반에 거리 오백!\"
\"조준 완료!\"
\"쏴!\"
리안이 주저없이 명령했다.
예의 그 반동이 전차를 흔들었고, 리안은 그때문에 살짝 벗겨진 베레모를 고쳐썼다. 그리고 적 전차의 격파를 확인하고, 환히 미소를 지었다.
\"자, 가즈아!\"
전차가 거친 야지 위를 움직이며 생기는 진동이 왜인지 달가웠다.
언덕을 넘어서자, 불타는 전차 여럿이 보였다. 자세히 구분은 안가지만, 아군과 적군이 모두 섞여 있을 것이다.
[여기는 파르스 리더, 파르스 리더! 적 전차대가 대충 궤멸한것 같다!]
중대장의 목소리도 덩달아 희망에 차 있었다.
[방해물도 사라졌으니 이제 거리낄 것이 없다. 대대장님의 명령이다. 모조리 쓸어버려! 단, 몸은 잘 보신하며, 후퇴를 명령할땐 언제나 빠지고!]
\"바라티어 03, 수신확인!\"
씩 미소를 지으며, 관측창에 눈을 대었다.
필력츄
이야 잘썼네
필력 ㅈ호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