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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당시 상황 설명하면

청일전 터지기 전까지 15년간 만들어놓은 기존 신식군대는 1895년 2차 갑오개혁 때 일본의 청나라 영향력 제거+조선 군사력 고자만들기 계획으로 전부 해체된 상태였음.

친일내각은 그 대신 일본군 고문단을 데려다가 군대 재건한다고 훈련대 2개 대대랑 진위대 2개 대대를 창설하긴 했는데,

얘네, 특히 훈련대는 일본에 조종당하는 신뢰할 수 없는 애들이었고 실제로 을미사변에 동원돼서 지들이 지켜야 될 왕후를 죽임

명성황후가 얼마나 병신이었건 간에 훈련대가 외국군에 결탁해서 이 인간 죽여버린건 외환에다 반역에다 내란 트리플크라운이었으니..

그래서 고종은 아관파천으로 친일파 전부 숙청하고 민영환을 러시아에 사절단으로 보내서 군사고문단을 초빙해 들여옴

푸챠타 대령(사진)을 필두로 총 14명이 들어왔음. 원래는 160명 규모로 와서 조선군에 1개 여단급 작전능력이랑 군수공장, 군사학교, 군병원 등 기틀을 잡아주려 했음

근데 영일이 지랄하고 한국 국내에도 독립협회를 필두로 반러 움직임이 들면서 러시아가 부담을 느끼게 됨. 뭐 실제로도 러시아가 제국주의적으로 이권요구한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게다가 당시 러시아 대외정책 상, 방금 획득한 남만주 다롄이랑 만주 일대 개발에 집중하느라 한반도에는 관심이 좀 줄어들어서 고문단은 14명 정도로 끝났고 머문 기간도 1년 반밖에 안됨

그래도 조선군이랑 그 후신인 머한제국군은 이들 덕분에 중대급 전술훈련은 받았고, 훈련교범도 얻은데다 서구식 회계랑 기본적인 근대군사교리는 배울 수 있던 편임.

좀 더 오래 머물렀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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