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6년에 벌어진 슈말칼덴 전쟁은 이후 약 100년이 조금 넘게 이어지는 완전히 새로운 성질을 띠는 전쟁의 시작이 된다. 바로 종교 전쟁이다.
1494년에서 1559년까지 이어진 이탈리아 전쟁은 세속 군주가 자신의 통치권을 넓히기 위해 벌인 매우 세속적인 전쟁이었다면, 심지어는 교황마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참전했다, 1560년부터는 이른바 '종교 전쟁의 시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이전과 이후 100여년 간 벌어진 전쟁의 성격은 달랐다.
물론, 칼마르 전쟁과 같이 여전히 세속적인 동기가 주를 차지하거나 오스만을 상대로 전 유럽이 맞서 싸운 긴 전쟁Long War도 있었긴 했지만, 이 기간동안 유럽 본토에서는 종교 전쟁이 주를 이뤘다.
슈말칼덴 전쟁, 1550년대의 프랑스-합스부르크 전쟁, 위그노 전쟁, 1610년까지 길게 이어진 수많은 군소 전쟁들, 그리고 전 유럽, 특히 독일을 전쟁의 참화에 몰아 넣은 30년 전쟁, 그리고 최후의 종교 전쟁으로 평가받는 영국 내전(1642~1651)까지, 종교 전쟁은 이 시대의 전쟁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요 키워드로 간주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들 전쟁이 개시되는 데 있어, 종교에 대한 인간의 광기는 아주 중대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면 영국 내전이 있다. 1630년대 말~1642년까지, 의회와 왕 사이의 갈등이 전쟁으로 치닫는 것은 잉글랜드의 절대다수는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 의회 내에서도 비율로 따지면 소수파였던 극렬 퓨리턴들이, 영국 의회와 사회 전체의 영국 신교도들이 카톨릭의 부활에 갖고 있던 두려움에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 기름을 끼얹으면서, 여러 협상을 결렬시키고 영국 신교도들을 선동하면서 갈등을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 이는 10년간 영국 본토에서는 수십만 명이 죽고 아일랜드 전체 인구의 4할(!)이 학살당하며 영국 내의 카톨릭 교도들에 대한 종교적 홀로코스트가 자행되는 결과를 낳는 영국 내전으로 이어졌다.
이후에 이 영국 내전은 지난 수백 년간, '폭압적 전제 군주에 맞서 종교적 자유와 영국의 민주화 및 진보를 위해 벌여진 필연적인 과정'으로 여겨졌으며, 영국의 신교도들은 정의의 수호자로 여겨졌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이것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먼나라 이웃나라 영국편에서 본 바로 그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이 쓰일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오래된 학설이 아니긴 해서 꼭 이원복 작가님의 잘못은 아니지만.
암튼 필자도 공부를 더 해봐야 하긴 하는데, 근세가 중세와 보인 차별점이 신 대신 인간이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된 것 모 이런 설명은 이제는 한계가 큰 듯 하다. 애초에 고대 중세 근세 근대가 딱딱 나뉘어지는 것으로 요즘 학계가 보고 있지도 않지만... 18 19세기에 중세와 근세를 차별화한답시고 중세로 밀어내버린 근세의 병맛 사건들(예를 들면 마녀 사냥이라던가 이단 심문관이라던가 도시에 창궐하는 전염병이라던가 하는 것은 모두 '근세 초기'에 나타났던 것들이다)에 대한 재조명도 대중들에게 더 널리 퍼져야 하겠고.
암튼 자러감 ㅂㅂ
1494년에서 1559년까지 이어진 이탈리아 전쟁은 세속 군주가 자신의 통치권을 넓히기 위해 벌인 매우 세속적인 전쟁이었다면, 심지어는 교황마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참전했다, 1560년부터는 이른바 '종교 전쟁의 시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이전과 이후 100여년 간 벌어진 전쟁의 성격은 달랐다.
물론, 칼마르 전쟁과 같이 여전히 세속적인 동기가 주를 차지하거나 오스만을 상대로 전 유럽이 맞서 싸운 긴 전쟁Long War도 있었긴 했지만, 이 기간동안 유럽 본토에서는 종교 전쟁이 주를 이뤘다.
슈말칼덴 전쟁, 1550년대의 프랑스-합스부르크 전쟁, 위그노 전쟁, 1610년까지 길게 이어진 수많은 군소 전쟁들, 그리고 전 유럽, 특히 독일을 전쟁의 참화에 몰아 넣은 30년 전쟁, 그리고 최후의 종교 전쟁으로 평가받는 영국 내전(1642~1651)까지, 종교 전쟁은 이 시대의 전쟁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요 키워드로 간주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들 전쟁이 개시되는 데 있어, 종교에 대한 인간의 광기는 아주 중대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면 영국 내전이 있다. 1630년대 말~1642년까지, 의회와 왕 사이의 갈등이 전쟁으로 치닫는 것은 잉글랜드의 절대다수는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 의회 내에서도 비율로 따지면 소수파였던 극렬 퓨리턴들이, 영국 의회와 사회 전체의 영국 신교도들이 카톨릭의 부활에 갖고 있던 두려움에 열심히 부채질을 하고 기름을 끼얹으면서, 여러 협상을 결렬시키고 영국 신교도들을 선동하면서 갈등을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 이는 10년간 영국 본토에서는 수십만 명이 죽고 아일랜드 전체 인구의 4할(!)이 학살당하며 영국 내의 카톨릭 교도들에 대한 종교적 홀로코스트가 자행되는 결과를 낳는 영국 내전으로 이어졌다.
이후에 이 영국 내전은 지난 수백 년간, '폭압적 전제 군주에 맞서 종교적 자유와 영국의 민주화 및 진보를 위해 벌여진 필연적인 과정'으로 여겨졌으며, 영국의 신교도들은 정의의 수호자로 여겨졌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이것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먼나라 이웃나라 영국편에서 본 바로 그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이 쓰일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오래된 학설이 아니긴 해서 꼭 이원복 작가님의 잘못은 아니지만.
암튼 필자도 공부를 더 해봐야 하긴 하는데, 근세가 중세와 보인 차별점이 신 대신 인간이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된 것 모 이런 설명은 이제는 한계가 큰 듯 하다. 애초에 고대 중세 근세 근대가 딱딱 나뉘어지는 것으로 요즘 학계가 보고 있지도 않지만... 18 19세기에 중세와 근세를 차별화한답시고 중세로 밀어내버린 근세의 병맛 사건들(예를 들면 마녀 사냥이라던가 이단 심문관이라던가 도시에 창궐하는 전염병이라던가 하는 것은 모두 '근세 초기'에 나타났던 것들이다)에 대한 재조명도 대중들에게 더 널리 퍼져야 하겠고.
암튼 자러감 ㅂ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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