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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믈랭은 정치에 소질이 있었던 군인으로,

권모술수가 뒤얽힌 제 3공화국에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한 수완가였다.

1935년에 그에게 자리를 빼앗긴 극우파 막심 베강 장군과 달리

그는 항상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반공화주의자라는 평판을 피했다.

1914년 마른 대반격의 작전을 수립해 극찬을 받았던 젊고 지혜로운 참모장교는

이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군복 바지를 재단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68세의 까칠한 틀딱이 된 지 오래였다.

가믈랭은 예술, 철학, 문학 등에 자신과 취향이 맞는 참모장교들을 총애하여

그들과 독일이 공격해 왔을 때의 대책이 아닌, 지적 관심사를 함께 나누고 고상한 분위기에 취했으며

그럴 때마다 그는 현실세계에서는 동떨어져, 마치 프랑스 지식인 계층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을 즐겼다.

가믈랭은 무선통신을 극히 불신하여 무전기가 아닌 전화로 벨기에 진군 대기 명령을 내렸다.

낫질작전이 개시되어 독일군이 아르덴을 돌파하기 시작할 때,

가믈랭은 독일이 자기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다는 확신에 차서

복도를 왔다갔다하며 콧노래로 1차 대전 때의 군가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중략)처칠은 "전략 예비대는 도대체 어디 있소?"라고 물은 뒤, 프랑스어로 되물었다.

가믈랭은 마치 남의 얘기라도 하듯 고개를 젓고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없습니다."

그 직후, 처칠은 건물 밖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창 밖을 내다보니, 프랑스 외무부 공무원들이 멘붕 상태에 빠져

서류들을 손수레로 날라 큰 모닥불에 쏟아붓는 것이었다.

처칠은 가믈랭이 독일군의 돌파에 반격할 예비대 편성 자체를 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닫고 아연실색했다.



- 앤터니 비버 "제2차 세계대전"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