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조선후기에 보통 1할에서 19C초에는 2할, 그리고 조선후기 전반적으로 수령이 부정착취한다고 해도 2할 혹은 3할을 못 넘은 것으로 보이는데, 19세기 들어서 삼정의 문란으로 대표되는 부정부패 및 인구감수로 인한 세금 증가 때문에 백성의 생활수준이 크게 나빠졌다.
에도시대는 4공6민을 표방했으나, 세율의 기준이 되는 다이묘의 석고수가 실제 생산량과 달랐고 이 석고수를 함부로 올리는 것 또한 허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에도시대의 농업생산량 증가와 맞물려 에도 초기에는 4할 중기에는 35% 에도시대 이후 메이지 초기에는 28%로 감소되는 양상을 보였다. 세율이 낮아짐과 함께 높은 세율이 원인이 된 잇키는 오히려 19세기로 갈수록 감소했다.
그동안 실질세율이 어떤지 궁금했는데 일단은 논문 및 서적에 기반한 인터넷 글로 정리함. 그러므로 틀릴수도 있곶 나도 일단 각잡고 찾아보기 전에 개요만 잡고 간다는 느낌으로 정리해봄
ㄴㅁㅂ이긴 한데 그냥 했다 쉽볼
밀리썰)돌격포는 1943년 중반에 자우코프(돼지코)형 포방패가 도입되기 전까지 비오면 포방패 뒤쪽으로 물이 줄줄 샜다. 천장에 있는 잠망경용 구멍으로도 물이 새서 눈이나 비가 오면 돌격포는 이쪽에 방수포를 덮고 돌아댕겨야 했다.
에도시대는 4공6민을 표방했으나, 세율의 기준이 되는 다이묘의 석고수가 실제 생산량과 달랐고 이 석고수를 함부로 올리는 것 또한 허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에도시대의 농업생산량 증가와 맞물려 에도 초기에는 4할 중기에는 35% 에도시대 이후 메이지 초기에는 28%로 감소되는 양상을 보였다. 세율이 낮아짐과 함께 높은 세율이 원인이 된 잇키는 오히려 19세기로 갈수록 감소했다.
그동안 실질세율이 어떤지 궁금했는데 일단은 논문 및 서적에 기반한 인터넷 글로 정리함. 그러므로 틀릴수도 있곶 나도 일단 각잡고 찾아보기 전에 개요만 잡고 간다는 느낌으로 정리해봄
ㄴㅁㅂ이긴 한데 그냥 했다 쉽볼
밀리썰)돌격포는 1943년 중반에 자우코프(돼지코)형 포방패가 도입되기 전까지 비오면 포방패 뒤쪽으로 물이 줄줄 샜다. 천장에 있는 잠망경용 구멍으로도 물이 새서 눈이나 비가 오면 돌격포는 이쪽에 방수포를 덮고 돌아댕겨야 했다.
조선은 여기에 소작 생각하면.
ㄴ조선 후기에 세금은 대부분 토지로 부과돼서 땅 없는 소작농들은 지주가 자기 세금 전가시키지 않는 이상 부담할 세금 자체가 얼마 없는데.
소작은 보통 절반 떼어갔다고 하는데, 이것도 조성 후기로 가면 양반 지주층의 영세화로 인해서 소작인/노비에 대한 통제가 약해지고 농업생산량은 증가하는데 지주에게 부담하는 곡식 양은 그대로라 상대적으로 양이 줄었다고 함. 근데 사실 나도 소작민 생활의 실제는 잘 모르겠는데스...
조선후기 가면 지주가 소작인한테 대동세 전가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곤 하는데 정확히 어느 시대인지도 모르고 그 대동세도 4% 정도인데스
소작은 케바케가 너무 큼. 걍 지주랑 계약서 싸인한거 따라가는거라
소작관련은 서류발굴이 더 많이 되어야함 - dc App
ㄴ ㅇㅇ 아직은 확실한 형태를 알기 힘든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