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7월 14일, 소련의 전차설계자, 알렉산드르 모로조프는 타계합니다. 그가 구상했던 미래는 이제 후배들에게 남겨준 유산이 되었지요. 하리코프는 모로조프의 타계 후에도 계속해서 Object 490에 대한 설계를 지속합니다.

(후기형 모형 모델)


"흑표라고? 에헤이. 뭔소리요."

1981년 모로조프의 유작과도 마찬가지인 Object 490은 "토폴"이라는 소련 국방부가 지정한 공식적인 이름을 가진채로 현재 형태까지 오게 됩니다. 모로조프의 유작을 잇게한 아들, 예브게니 모로조프가 설계한 후기 작품이지요. 저피탐성 포탑, 분리식 연료부, 전투부, 포탑운용부(승무원 앉는곳) 포탑 탄약장전기와 예비탄 컨베이어(포탑후방과 차체가 연결되어 있는 형태)등. 다양한 구상들을 현실에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기동성을 위해 유압서스펜션을 장착하였고, 우리 전차와 마찬가지로 차체자세변경을 통한 용이한 사격을 할수 있었음을 언급되어 있습니다. 관측창은 두 텔레비전 형태의 관측창이 달려 있어, 두 명의 전투원이 상호간 시야확보를 할수 있었습니다.

설계모델을 보면 알수 있듯, 능방장비 (쉬토라인것도 보이는군요)도 여기저기에 달려 있씁니다.

T-74에서 넘어온 설계이므로, 블로우 패널 장착은 기본이라, 유폭으로 승무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가장 큰 설계적 특징은 두명의 전투원, 낮은 차체와 저탐지성을 가져왔지만, 가시선 확보가 어려워 졌고, 포가 땅에 내려올때 땅에 찍을 가능성이 있던 것이 단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전차장의 역활이 애매해진 것이 혼란을 가져올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무기 삼아, 1980년, 라이벌 설계자(주동자는 코발류흐, 아니셴코, 추바렌코, 라치츠키) 가 이 설계를 대대적으로 변경한 버전, 이후 Object 490A라고 불리는 "완전히 NST에 벗어난" 전차를 제시합니다. 특히, 모로조프가 휴가를 떠난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져, 몆몆 전문가들은 "치졸한 행위" 라고 비난하기도 하며, 이때부터 NST 계획이 어긋났다고도 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490A 안은 기존의 것과 다른 포탑(저피탐성 포탑인건 같음)이고, 신형주포를 장착했지만, 설계방식은 사실상 T-64을 기반으로 둔 전차였습니다. 특히, 3명의 전투원으로, 사실상 설계사상은 기존의 것과 동일 했습니다.

하지만 3명의 전차원이 아닌 2명의 전차승무원인 설계가 매우 위험한 시도로 여겨졌는지, 1982년 3월 25-6일, 최고설계자회의에서 총책임자인 쇼민은 모로조프의 설계안보다, 코발류흐의 설계안을 선택. 공식적으로 '토폴' 계획은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알력에 의한 쫓겨남임을 많은 전문가들은 주장합니다. (Однако харьковские конструкторы во главе с главным конструктором Шоминым допустили фатальную ошибку и в 1982 году отвергло морозовский проект в пользу проекта ведущего конструктора Б.Р.Ковалюха,) - 특히, B.R 코발류흐의 발상은 사실상 모로조프의 유산격인 설계(NST-80)을 완전히 무시한 설계였고, 이를 선택한 쇼민 총설계국장에 대한 비난을 가하고 있는 언급이 꽤 됩니다. 이는 완전히 치명적인 실수였다고 말이지요.



계속 언급하자면, 이 전차 계획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현대 소련전차의 이미지는 매우 달라졌을 것. 이라는 것이지만, 욕심을 부린 설계국과 GABTU은 더욱 높은 TTT(요구성능)을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끔찍한 결과가 나오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