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근교대로 도로망 발달했다 하지만 그 발달한 도로망이 겨우 조선하고 별 차이 없는 정도인게 함정. 뭐 북학파들이 말하던 마차 이용 이런건 꿈도 못 꿨고 숙소도 요즘 보는 료칸 같은 시설은 한참 뒤에 얘기고 대부분 키친야도라고 조선 주막이나 별 차이없는 수준. 다이묘들은 애초에 절이나 귀족 저택을 이용했고. 상업은 일본 특유의 기형적 구조 때문에 발전한게 맞는데 상업 발전 = 도로망 발전은 아니란 소리.
댓글 51
상업은 어쩌다 발전한거임?
익명(211.36)2018-08-30 18:10
다이묘들이 생산직들을 에도로 다 불러서 반강제 노역 시킴.,
익명(61.253)2018-08-30 18:12
ㄴ참근교대제가 다이묘 세력 약화를 위해서 일정 간격으로 덴노가있는 수도로 집합시켜서 충성도 확인하는거
NEDAPOI(qkrdlsgur99)2018-08-30 18:12
자연스레 다이묘가 가니까, 산하에 있는 생산직들이 우르르 딸려가는거고, 덕분에 수도를 중심으로 도로망이 좀 활성화 된 측면이 있음
NEDAPOI(qkrdlsgur99)2018-08-30 18:13
ㄴ무사랑 상인계급을 철저하게 도시 안에 몰아넣고 생산활동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자급자족이 안 되는 거대한 소비계층이 강제적으로 형성이 됨. 그리고 산킨코다이라는 정기적인 강제 대구모 이동으로 인해 다이묘들도 천문학적인 출혈을 강요당함.
익명(110.70)2018-08-30 18:13
정 단순화 시키면 수요 있는곳에 발전있다 정도지. 나름 귀족 사회.ㅋㅋ
익명(61.253)2018-08-30 18:14
근데 사실 도로 닦아야한다는건 당대 동양 관료들 중에서도 주장한 사람들이 꽤 많음. 한중일 모두 정부에서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Shahrbarun(sputnik20)2018-08-30 18:31
일본은 상업발전이랑 은광산 많았음 등등으로 기본 자산이 몇백년간 쌓인게 근대화하는데 도움이 된거지 에도시대에 도시 발전했다고 보긴 힘든듯
익명(175.117)2018-08-30 18:35
일본의 그 은광산 은 대부분이 조선 쌀이나 포목이랑 교환되어서 한반도를 건너 청으로 흡수됐는데
익명(110.70)2018-08-30 18:37
ㄴ 그럼 일본의 근대화는 순수 운빨임? 상업도 기형적인 구조이고 은도 전부 중국에 흡수 뭐 없네?
익명(175.117)2018-08-30 18:39
일본 근대화도 개 운빨좋은거 맞음.
에틸렌(bookbg)2018-08-30 18:41
내분은 마침 아프간전/보어전/남북전쟁/크림전쟁 등등으로 열강 개입 못하고 하층민 폭등같은건 홋카이도 개척으로 보내고
에틸렌(bookbg)2018-08-30 18:42
일단 적어도 일본은 서양이랑 대금 결제할 수 있는 재원이 있었잖음. - dc App
가재는게편이랑께(popcorn110)2018-08-30 18:48
운이 좋은 것도 기본이 안 받쳐주면 나가리임
익명(121.154)2018-08-30 18:49
존나 운빨인건 맞음. 난학이니 상업 발전이니도 조선에 비했을때나 해당하는 얘기지 중국이 오히려 더 폭 넓게 서양과 접촉했고 상업도 발달했음. 세금제도 이런 것도 더 선진적?이었고. 군사력도 막부 시대 땐 병신 다 됐었고 내부 정치적으로도 존왕양이니 도막이니 하면서 조선 못지 않게 혼란했지. 실제로 막부가 아예 망해버렸고.
익명(110.70)2018-08-30 18:49
개항 직전 3,400 만의 인구,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소득
익명(121.154)2018-08-30 18:50
당시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했던 나라들은 운이 좋아도 기본이 따라주지 않았음. 최소한 일본은 기본은 갖췄고 운이 따른거지
익명(121.154)2018-08-30 18:51
운도 작용했지만, 지도부?의 적극적인 개화의지가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던것
NEDAPOI(qkrdlsgur99)2018-08-30 18:52
소득이 가장 높은게 아니고 세입이 가장 높은거지. 그것도 중국은 중앙재정만, 일본은 막부직할령에 타번 수입까지 합쳐서 그런거고 그나마도 살인적인 세율로 가능했던거고.
익명(110.70)2018-08-30 18:52
흠...각종 통계를 보면 개항 직전 일본의 일인당 소득은 동아시아 최고는 맞음
익명(121.154)2018-08-30 18:53
중국은 여건상으로 일본보다 훨씬 나았지만, 한편으론 이 훨씬 나은 여건덕분에 지도부 입장에선 굳이 개항할 이유가 없었음.
NEDAPOI(qkrdlsgur99)2018-08-30 18:53
아니 개항할 이유가 아니라 개화할
NEDAPOI(qkrdlsgur99)2018-08-30 18:54
일례로 동유럽,남미 수준의 일인당 소득에 3,400 만의 적절한 인구,비교적 높은 문해율
익명(121.154)2018-08-30 18:54
걍 존나 많은 맨파워로 쇼미더 머니 치고, 넘치는 돈으로 일부만 서구화하면 장땡일줄 알았던거고
NEDAPOI(qkrdlsgur99)2018-08-30 18:54
일본의 제일 큰 성공요인은 구시대를 끌어안고 퇴장할 막부와 막부를 대신해서 새 시대를 열 유신정부가 있었다는거지. 조선, 청은 썩은 조정은 있었지만 이를 대신할 정치세력이 없었고.
익명(110.70)2018-08-30 18:54
근대화가 로또는 맞지만 그 로또도 로또 살 돈이 있는 사람이 당첨되는 거지
익명(121.154)2018-08-30 18:55
조선은 하고싶어도 못할정도로 내부상태가 씹창이였고, 일본도 씹창인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여건이 좀 나았으니깐
NEDAPOI(qkrdlsgur99)2018-08-30 18:55
전근대 통계 자체가 워낙 오락가락해서 그닥 근거가 되기 어려운데
익명(110.70)2018-08-30 18:55
일본은 그냥 개화떡상 가즈아 하고 있는 전재산 전부 꼴아서 떡상한것. 조선은 개화코인 살 돈이 없었고
NEDAPOI(qkrdlsgur99)2018-08-30 18:56
조선 내부상태가 과연 그 정도로 십창이었을까? 난 대원군이 고종이랑 싸우지만 않았어도 가능성 있었다고 봄.
익명(110.70)2018-08-30 18:57
중국은 굳이 개화코인 안사도 먹고살만 했으니까 걍 안산거
NEDAPOI(qkrdlsgur99)2018-08-30 18:57
근대 이전의 통계가 어려운 것이지 근대 통계는 해석하기 쉽지 개항 직전이면 수백년 전도 아니고 고작 1860년인데
익명(121.154)2018-08-30 18:58
싸우지 않았어도라는 가정 하에 가능했던거잖아, 실상은 그렇지 못해서 씹창이였던거고
NEDAPOI(qkrdlsgur99)2018-08-30 18:58
안사도 먹고 살만했기는 아편전쟁 줘터지고 얼마나 필사적으로 개화할려고 했는데. 이민족 정권을 유지하면서 개화를 하려니 뜻대로 안 된거지 의지가 없어서 안한게 아니지.
익명(110.70)2018-08-30 18:58
네 말대로 운이 통한 것은 맞지만 그 운도 기초가 되어 있기에 성공한 것.
익명(121.154)2018-08-30 18:59
그 이민족 정권이 결국 청나라의 의지 아니냐.. 꽤 다수의 지식인이 당장 전부 갈아치워야한다고 들고일어나기도 했지만.
NEDAPOI(qkrdlsgur99)2018-08-30 19:00
청나라는 운좀 따라줬으면 가능성이 보이는데 조선이 정말로 근대화 가능성이 있다고 봄?
익명(175.117)2018-08-30 19:00
근본적으로 조선하고 청이 일본하고 틀렸던게 그거임. 구시대의 정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근대화만 할려고 한거. 구시대 기득권들 입장에서 당연히 이게 달가울리가 없고 그런 놈들한테 근대화를 추진하라고 일을 맡기니 잘 풀릴 리가 없지.
익명(110.70)2018-08-30 19:01
1911년 조선의 일인당 소득이 626 달러(낙성대 경제연구소가 출처)임 무슨 놈의 근대화는 근대화
익명(121.154)2018-08-30 19:01
청나라는 돈많지 서양이랑 교류 많았지 근데 조선은 그거 2개 다 안되잖아
익명(175.117)2018-08-30 19:02
일례로 1870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조사된 일본의 인당 곡물 소비량이 1.9석에 달하는데,1917년(약 50년간 근대적 농법이 도입되었음에도) 조선총독부에서 조사된 조선의 인당 곡물 소비량보다도 2할 가량 많다
익명(121.154)2018-08-30 19:03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한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조선은 근대화 능력이 없었음 운도 없었고
익명(121.154)2018-08-30 19:04
일본은 뭐 소득이 한 만달러 됐음? 개중에 그나마 높은거지 천달러 수준으로 도토리 키재기 수준일텐데
익명(110.70)2018-08-30 19:07
청과 인도보다 약 1.5~2.0 배 많은데? 조선은 청과 인도보다도 더 낮은 수준이고
익명(121.154)2018-08-30 19:14
낙성대 경제연구소에서 한국의 장기통계(1911-2010)을 발간했다. 병합 당시 조선의 소득은 일본과 비교하기 미안하고 개항 직전 일본의 소득과 비교해도 약 2배 가량 차이가 있음
익명(121.154)2018-08-30 19:21
교보문고에서 한국의 장기통계를 구매해서 읽어봐도 좋아. 식민지 기간의 경제를 연구하느라 일본과 조선의 소득 추이와 곡물 생산량 추이가 나오거든
익명(121.154)2018-08-30 19:30
운빨이다 뭐다 다필요없는 딸딸이지
결국은 해낸건데원폭맞기
shin(39.7)2018-08-30 21:49
병합 당시 조선 1인당 소득 약 900달러, 일본은 1300 달러 정도일건데? 그리 비교하기 미안한 수준은 아닌듯
익명(123.248)2018-08-31 05:35
ㄴ바보야 그거 maddison project(version 2001)이야 당시 일본 경제 규모를 과소 평가,당시 조선 인구를 약 1240만(총독부 자료 그대로)으로 잡아서 통계를 내서 그래
익명(121.154)2018-08-31 08:26
Maddison project를 예시로 들려면 최신판을 가져와서 예시를 들어야지...병합 당시 조선 626 달러,일본 2100 달러
익명(121.154)2018-08-31 08:28
ㅋㅋ 정작 조선통신사도 증언한게 일본 발전상인데 이런 병신같은 정신승리의 향연은 처음보네 ㅋㅋ
상업은 어쩌다 발전한거임?
다이묘들이 생산직들을 에도로 다 불러서 반강제 노역 시킴.,
ㄴ참근교대제가 다이묘 세력 약화를 위해서 일정 간격으로 덴노가있는 수도로 집합시켜서 충성도 확인하는거
자연스레 다이묘가 가니까, 산하에 있는 생산직들이 우르르 딸려가는거고, 덕분에 수도를 중심으로 도로망이 좀 활성화 된 측면이 있음
ㄴ무사랑 상인계급을 철저하게 도시 안에 몰아넣고 생산활동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자급자족이 안 되는 거대한 소비계층이 강제적으로 형성이 됨. 그리고 산킨코다이라는 정기적인 강제 대구모 이동으로 인해 다이묘들도 천문학적인 출혈을 강요당함.
정 단순화 시키면 수요 있는곳에 발전있다 정도지. 나름 귀족 사회.ㅋㅋ
근데 사실 도로 닦아야한다는건 당대 동양 관료들 중에서도 주장한 사람들이 꽤 많음. 한중일 모두 정부에서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일본은 상업발전이랑 은광산 많았음 등등으로 기본 자산이 몇백년간 쌓인게 근대화하는데 도움이 된거지 에도시대에 도시 발전했다고 보긴 힘든듯
일본의 그 은광산 은 대부분이 조선 쌀이나 포목이랑 교환되어서 한반도를 건너 청으로 흡수됐는데
ㄴ 그럼 일본의 근대화는 순수 운빨임? 상업도 기형적인 구조이고 은도 전부 중국에 흡수 뭐 없네?
일본 근대화도 개 운빨좋은거 맞음.
내분은 마침 아프간전/보어전/남북전쟁/크림전쟁 등등으로 열강 개입 못하고 하층민 폭등같은건 홋카이도 개척으로 보내고
일단 적어도 일본은 서양이랑 대금 결제할 수 있는 재원이 있었잖음. - dc App
운이 좋은 것도 기본이 안 받쳐주면 나가리임
존나 운빨인건 맞음. 난학이니 상업 발전이니도 조선에 비했을때나 해당하는 얘기지 중국이 오히려 더 폭 넓게 서양과 접촉했고 상업도 발달했음. 세금제도 이런 것도 더 선진적?이었고. 군사력도 막부 시대 땐 병신 다 됐었고 내부 정치적으로도 존왕양이니 도막이니 하면서 조선 못지 않게 혼란했지. 실제로 막부가 아예 망해버렸고.
개항 직전 3,400 만의 인구,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소득
당시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했던 나라들은 운이 좋아도 기본이 따라주지 않았음. 최소한 일본은 기본은 갖췄고 운이 따른거지
운도 작용했지만, 지도부?의 적극적인 개화의지가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던것
소득이 가장 높은게 아니고 세입이 가장 높은거지. 그것도 중국은 중앙재정만, 일본은 막부직할령에 타번 수입까지 합쳐서 그런거고 그나마도 살인적인 세율로 가능했던거고.
흠...각종 통계를 보면 개항 직전 일본의 일인당 소득은 동아시아 최고는 맞음
중국은 여건상으로 일본보다 훨씬 나았지만, 한편으론 이 훨씬 나은 여건덕분에 지도부 입장에선 굳이 개항할 이유가 없었음.
아니 개항할 이유가 아니라 개화할
일례로 동유럽,남미 수준의 일인당 소득에 3,400 만의 적절한 인구,비교적 높은 문해율
걍 존나 많은 맨파워로 쇼미더 머니 치고, 넘치는 돈으로 일부만 서구화하면 장땡일줄 알았던거고
일본의 제일 큰 성공요인은 구시대를 끌어안고 퇴장할 막부와 막부를 대신해서 새 시대를 열 유신정부가 있었다는거지. 조선, 청은 썩은 조정은 있었지만 이를 대신할 정치세력이 없었고.
근대화가 로또는 맞지만 그 로또도 로또 살 돈이 있는 사람이 당첨되는 거지
조선은 하고싶어도 못할정도로 내부상태가 씹창이였고, 일본도 씹창인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여건이 좀 나았으니깐
전근대 통계 자체가 워낙 오락가락해서 그닥 근거가 되기 어려운데
일본은 그냥 개화떡상 가즈아 하고 있는 전재산 전부 꼴아서 떡상한것. 조선은 개화코인 살 돈이 없었고
조선 내부상태가 과연 그 정도로 십창이었을까? 난 대원군이 고종이랑 싸우지만 않았어도 가능성 있었다고 봄.
중국은 굳이 개화코인 안사도 먹고살만 했으니까 걍 안산거
근대 이전의 통계가 어려운 것이지 근대 통계는 해석하기 쉽지 개항 직전이면 수백년 전도 아니고 고작 1860년인데
싸우지 않았어도라는 가정 하에 가능했던거잖아, 실상은 그렇지 못해서 씹창이였던거고
안사도 먹고 살만했기는 아편전쟁 줘터지고 얼마나 필사적으로 개화할려고 했는데. 이민족 정권을 유지하면서 개화를 하려니 뜻대로 안 된거지 의지가 없어서 안한게 아니지.
네 말대로 운이 통한 것은 맞지만 그 운도 기초가 되어 있기에 성공한 것.
그 이민족 정권이 결국 청나라의 의지 아니냐.. 꽤 다수의 지식인이 당장 전부 갈아치워야한다고 들고일어나기도 했지만.
청나라는 운좀 따라줬으면 가능성이 보이는데 조선이 정말로 근대화 가능성이 있다고 봄?
근본적으로 조선하고 청이 일본하고 틀렸던게 그거임. 구시대의 정권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근대화만 할려고 한거. 구시대 기득권들 입장에서 당연히 이게 달가울리가 없고 그런 놈들한테 근대화를 추진하라고 일을 맡기니 잘 풀릴 리가 없지.
1911년 조선의 일인당 소득이 626 달러(낙성대 경제연구소가 출처)임 무슨 놈의 근대화는 근대화
청나라는 돈많지 서양이랑 교류 많았지 근데 조선은 그거 2개 다 안되잖아
일례로 1870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조사된 일본의 인당 곡물 소비량이 1.9석에 달하는데,1917년(약 50년간 근대적 농법이 도입되었음에도) 조선총독부에서 조사된 조선의 인당 곡물 소비량보다도 2할 가량 많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한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조선은 근대화 능력이 없었음 운도 없었고
일본은 뭐 소득이 한 만달러 됐음? 개중에 그나마 높은거지 천달러 수준으로 도토리 키재기 수준일텐데
청과 인도보다 약 1.5~2.0 배 많은데? 조선은 청과 인도보다도 더 낮은 수준이고
낙성대 경제연구소에서 한국의 장기통계(1911-2010)을 발간했다. 병합 당시 조선의 소득은 일본과 비교하기 미안하고 개항 직전 일본의 소득과 비교해도 약 2배 가량 차이가 있음
교보문고에서 한국의 장기통계를 구매해서 읽어봐도 좋아. 식민지 기간의 경제를 연구하느라 일본과 조선의 소득 추이와 곡물 생산량 추이가 나오거든
운빨이다 뭐다 다필요없는 딸딸이지 결국은 해낸건데원폭맞기
병합 당시 조선 1인당 소득 약 900달러, 일본은 1300 달러 정도일건데? 그리 비교하기 미안한 수준은 아닌듯
ㄴ바보야 그거 maddison project(version 2001)이야 당시 일본 경제 규모를 과소 평가,당시 조선 인구를 약 1240만(총독부 자료 그대로)으로 잡아서 통계를 내서 그래
Maddison project를 예시로 들려면 최신판을 가져와서 예시를 들어야지...병합 당시 조선 626 달러,일본 2100 달러
ㅋㅋ 정작 조선통신사도 증언한게 일본 발전상인데 이런 병신같은 정신승리의 향연은 처음보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