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킨 마루는 현재 남아있는 사진이 없는고로, 비슷한 선급으로 대체함.)






니킨 마루(日錦丸)는 1920년 1월 미국 시애틀의 J. F. Duthie & Company 조선소에서 건조된 5,802GRT 규모의 상선이었음.

취역 당시에는 미국 선적으로서 SS 웨스트 이반으로 취역후 프랭크 워터하우스 해운사에서 운영되었고, 1928년에는 다른 해운사로 매각되면서 SS 골든 웨스트로 개명되어 운영되었음.

1937년경, 골든 웨스트는 아메리칸 하와이안 기선사에 매각된 이후 SS 캐네이디안으로 다시금 개명되어 운항되었음.

1942년경, 캐네이디안은 필리핀에서 일본군에게 나포되어 키티가와 상요 해운 소속으로서 호쿠세이 마루로 개명된 이후, 다시금 니킨 마루로 선명이 바뀌게 됨. 1943년경, 니킨 마루는 일본 육군으로 징용되어 각종 수송임무를 담당하게 되었음.

1944년 6월 22일경, 니킨 마루는 홍콩에 전개하고있는 일본육군 제23군 보충병력 및 선원 포함 3,219명을 수송해 증원하기 위해 모지에서 출항했음.

병력수송 목적은 일본육군 제23군이 6월에 시작한 상계 제1기작전(광동작전)에 이어 제2기작전(양저우)을 7월에 개시하는것에 맞춰 쫒아가기 위해서였음. 니킨 마루의 예정항로는 일로 서쪽으로 건너 상하이(우쑹)로, 그리고 상하이에서 대만의 가오슝(타카오)을 경유하여 홍콩에 입항할 예정이었음.


그러나 동중국해와 포르모사 해협(대만 해협) 일대는 미국 잠수함들이 활발하게 활동 중에 있었고, 무엇보다도 1944년은 미국 잠수함들의 황금기이자 일본 선단에게 있어 매우 고통스러운 최악의 기간이기도 했음.

니킨 마루는 일본 해군이 미국 잠수함의 진출을 억제하기 위해 부설한 기뢰를 피할 것을 목적으로 제주도의 북쪽 해협을 통과해서 한반도 서해안으로 북상, 그 후 황해를 가로질러 칭다오 남방에서 남하, 상하이로 항하려던 것으로 판단되었음.

닛산 기선사 기록에 따르면, 니킨 마루에는 두명의 선장이 승선한 것에서
미뤄 보아 중요한 수송이였던 점도 엿보였음. 또한 이 병력수송 계획은 육해군이 협동으로 입안하고 실행하는 협정이 되어있었음. 모지에서 제주도-한반도 서해안까지는 일본해군의 진해경비부가 담당했으며, 별도로 호위함정의 호위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항공기를 동원한 호위가 주가 되었음.






하지만 7월 중후반이 넘어가도 상하이에서도, 가오슝에서도, 홍콩에서도 니킨 마루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음. 그 어느곳에서도 입항을 했다는 보고는 전혀 올라오지 않은 것이었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44년 6월 29일 미국측 시각 1140분경 목포 앞바다 인근.

- 주목! 북쪽에서 상선 육안 포착! 서쪽으로 이동 중인것으로 보임!



1MC를 통해서 항해함교의 당직사관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음. 리처드 H. 오케인 소령이 지휘하는 발라오급 잠수함 탱(SS-306)의 함내는 견시가 상선을 육안 포착하자마자 분주해졌음. 전투배치 명령이 떨어지면서 승조원들이 정위치하기 시작했고 어프로치 팀이 편성되어 표적에 대한 식별 및 추적이 개시되기 시작했음.

잠망경 심도로 잠항한 탱은 7노트의 속력으로 표적에게 접근했고, 악기상으로 인해 파도를 맞으면서 저항을 받아 덜덜 떨리는 잠망경 렌즈 너머로 마스트와 연돌, 트윈데커 구성의 상선 1척이 식별되었음.

탱의 음탐사는 음탐 방위각 체크를 함과 동시에 표적의 소음을 코닝타워 스피커를 통해 들려주었음. 탱의 코닝타워 내에는 표적이 내고 있는 스팀터빈 엔진음과 저RPM의 스크류 회전음이 울려퍼졌음.

하지만, 공격하기에 위치가 너무 좋지 않았음. 전속력인 9노트로 추격해도, 이미 표적은 탱이 공격을 수행하기 유리한 위치에서 벗어날 정도였음. 표적과의 거리는 약 4,500야드, 함수각은 좌현 60도.



'견시, 코닝타워로! 부상 준비, 엔진 4기 가동 준비!'



1330분경. 오케인 소령은 잠항을 통한 추격을 단념하고 부상을 지시한 이후, 표적과의 거리를 벌린 이후 표적을 앞질러 유리한 공격위치를 선점하는 엔드 어라운드 기동을 실시하기로 결정했음. 표적과의 거리는 15,000야드.

1600분경.

탱은 엔드 어라운드 기동을 완료한 이후, 유리한 공격위치를 점하는 데에 성공했고 잠망경 심도로 잠수해 표적에게 접근하기 시작했음. 표적의 침로는 정침로 225도, 속력 7노트, 거리 16,000야드로 계산되었음.

오케인 소령은 미 해군 정보국(ONI)에서 발행한 식별책을 이용해 잠망경 렌즈 너머로 보이는 표적의 선급 식별을 시도했음. 표적은 공격하기 최적의 조건으로 진입해 오고 있었으며 선명은 타잔 마루로 판단되었음.

1730분경. 함수 어뢰 4발, 함미 어뢰 4발 발사 준비가 진행되었음. 이 어뢰들은 해당 표적을 2번이상 격침시키고도 남을 양이었으나, 굳이 이 어뢰들을 전부 쏟아낼 필요는 없다 판단했음.

표적은 이렇다 할 만한 지그재그 기동조차도 수행하지 않은 채, 탱이 있는 곳으로 곧장 접근해오고 있었음. 탱의 TDC는 지속적으로 표적의 미래위치를 도시해냈음.

1759분. 오케인 소령은 잠망경 방위와 TDC가 도시해내는 표적 방위각이 동일한지 확인하기 위한 작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음.




'방위각 체크 준비. 잠망경 올려! ...방위.. 마크!'

'확인!'

'1, 2번 어뢰발사관 개방!'




탱의 침로는 정침로 330도, 속력 3노트, 심도 62피트. 표적의 침로는 정침로 255도 유지, 속력 7노트, 거리는 1600야드. 어뢰 선회각은 각각 우현 103도, 우현 106도. 자이로 각도는 002도, 359도. 심도 10피트 항주, 초탄 발사부터 차탄 발사까지의 발사간격 15초.

오케인 소령은 1, 2번 발사관에 장전된 마크23 어뢰 2발을 순차적으로 발사했음. 어뢰는 TDC에 입력된 사격제원에 따라 정확하게 표적을 향하고 있었고, 오케인 소령은 마크23 어뢰의 항적을 잠망경으로 직접 확인하며 어뢰가 명중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음. 어뢰 진입각이 정말 완벽했음. 하지만 이 확신은 곧이어 실망으로 돌아오게 되었음.


어뢰 폭발음이 들리지 않았음.



사격제원은 정확했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뢰가 표적의 선저로 지나친 것으로 보였음. 채 실망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전에, 표적이 공격징후를 알아차리고 아직까지 남아있었던 어뢰의 항적을 따라 탱을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했음. 충각일까, 자위용 폭뢰일까.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음.



'양현 앞으로 표준출력, 좌현 전타! 네거티브 탱크 충수! 사운딩(측심) 실시!'



수심은 250피트, 탱은 200피트까지 급히 잠수하기 시작했음. 표적은 구축함처럼 돌진해와 폭뢰 2발을 투하했고, 꽤 가까이서 기폭했으나 피해는 없었음. 표적은 접근거부 목적이었던지 추가로 폭뢰를 투하하면서 도주하고 있었고 음탐사는 표적의 스크류 회전음이 점차 멀어지고 있다고 보고해왔음.

1910분경. 표적의 음탐접촉이 상실되었음. 최종 음탐 접촉상실 방위각은 진방위 350도. 탱은 잠망경 심도로 다시 상승했고, 주변을 관측하기 시작했음. 초계비행 중인 항공기는 없었고, 오케인 소령은 SJ레이더를 통해 표적 재접촉을 실시하고 다시 추격할 생각이었음.

가만히 생각해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음. 정확히 발사한 어뢰가 왜 선저로 지나쳐 빗나갔을까. 혹시 마크23 역시도 기존 마크14처럼 항주심도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도대체 어떤 원인을 탓해야 했을까. 부장인 머레이 J. 프래지 주니어 소령에게 TDC의 심도 입력을 재확인하게 시켜보아도, 어뢰는 정확히 10피트를 항주하도록 입력되어 있었음. 혹시 고장이 아니었을까 다시금 확인해봐도, 고장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음.

혹시 몰라서 이들은 다시금 선박 식별책자를 확인해 보았음. 화물을 최대한 탑재했을 시 흘수는 24피트, 최저 흘수는 8피트...

여기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닐까. 잠망경을 확인했을 당시 일단 표적은 거친 해상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항해를 하고 있었음. 그렇다면, 적당한 수준의 무게를 가진 화물만을 싣고 중국으로 이동하려는 것 아닐까라고 판단하게 되었고 다음번에는 좀더 항주심도를 얕게 설정해서 발사하기로 결정했음. 주1)

2030분경. 음력전화 벨이 울리면서 전탐사가 표적에 대한 레이더 접촉을 오케인 소령에게 보고해왔음. 방위각 000도. 표적은 040도에서 070도로 변침하면서 대흑산도 인근 연안 10패덤 가량의 얕은 수심으로 이동하려는 모습을 보였음.



'프래즈(부장 머레이 J. 프래지 소령), 거리 7천야드까지 근접할때까지 항해함교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어. 월몰 시간이 되면 거리 5천야드까지 근접시킨 다음 날 다시 호출해. 모트(견습함장 모튼 H. 리틀 소령)도 필요하다 싶으면 같이 견시 세우고.'

'예, 알겠습니다.'

오케인 소령은 잠깐 휴식을 취하기 위해 부장에게 지시사항을 내리고, 잠깐동안의 휴식을 가졌음.



6월 30일. 월몰시간이 되자 프래지 부장이 오케인 소령을 호출했음.


'함장님, 이번엔 저 놈을 확실하게 잡는겁니까?'(일등사관당번병 하워드 M. 워커)

'물론이지, 워커. 저놈 중앙부에 한방 제대로 먹여야지.'


0040분경.


'총원 전투배치. 함수 5번 발사관, 함미 발사관 4문 전부 발사 준비시키고, 항주심도를 6피트로 설정해라. 내가 함 지휘를 맡는다. 타각 20도, 침로 340도 잡아. 양현 앞으로 둘.'


거리 2,500야드, 탱은 표적의 좌현 선수부를 향해 변침했고 거리를 1,500야드까지 좁히기 시작했음. TBT를 통해서 표적 방위각을 확인 후, 오케인 소령은 함을 정지시킨 이후 어뢰발사관을 개방했음.

0101분경. 표적과의 거리 750야드, 표적 정침로 075도, 속력 9노트. 탱의 침로는 정침로 345도, 함 정지상태. 어뢰 선회각은 092도, 자이로 각은 354도. 어뢰 항주심도 6피트, 명중 예상 시간은 30초.



'방위각 체크 준비. ...방위.. 마크!'

'확인!'

'5번 어뢰 발사!'


이번에는 틀림없이 명중할 것이라 확신했음. 오케인 소령은 항해함교에서 쌍안경을 통해 마크23 어뢰가 정확하게 표적의 상부구조물 아래 흘수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어뢰는 정확하게 명중해 폭발했음. 어뢰에 명중한 표적은 순식간에 두동강 났으며, 엄청난 양의 연기가 주변을 덮었음.

하지만, 두동강 나서 급격한 경사로 가라앉고 있는 와중에 상선 자위용 함포 조작 요원들이 마지막 발악으로 탱을 향해 5~6발 가량의 함포를 사격했음. 하지만 이 최후의 발악은 사실상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무엇 하나 탱의 근처에라도 착탄하는 탄은 없었음.

표적이 완전히 가라앉은 이후, 오케인 소령은 전투배치 해제를 명하고 함내로 들어오면서 표적이 가라앉은 위도와 경도를 항해일지에 작성했음.






당시 탱이 타잔 마루라고 판단한 이 상선은 니킨 마루였음. 미국측 시간 6월 30일 0101분경, 일본측 시간 0205분경. 니킨 마루는 북위 35-05, 동경 125-00 해상에서 탱에 의해 격침당했음.

앞서 설명했듯, 격침 당시 니킨 마루에는 총 3,219명의 육군 병력과 승객, 선원들이 승선하고 있었으며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했음.



니킨 마루에 승선한 부대는 다음과 같음.

수송지휘관 - 가토 유키오 대위

- 제 23군 사령부
      전신 제14연대, 남지나방역급수부
   - 제130사단(쇼키) [교토] - 독립혼성 제23여단(쥰) [대만]
      보병대, 포병대, 공병대, 통신대
   - 제11군
      독립혼성 제22여단(세츠) [사쿠라], 독립 혼성 제22여단포병통신대, 광동12육군병원
   - 제20군
      제68사단(히노키) [오사카], 제58보병여단 [와카야마]
         사단공병대, 사단통신대, 사단병참대, 야전병원, 병마창
      제2독립철도공작대

이하 기타 병력 및 승객, 선원 및 해군포병.


일본측 자료에 따르면 3,219명으로 기록되기도 하고, 서방권 일부 자료에서는 3400여명, 심하면 3600여명까지도 추정하고 있으나 일본 측 자료가 조금 더 구체적인 피해 인명을 제시하고 있음.

호위함정 하나 대동하지 못하고 호위를 함에 있어 공백이 생길 위험이 높은 항공기 호위를 택했던 것부터 문제를 야기했는데, 실제로도 니킨 마루가 탱에게 공격당했던 시간대 역시도 항공 호위가 제공되지 못했던 시간대에서의 상황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치명적인 실수임에 분명했음.

또한 호위함의 부재는 일본 병력수송 특유의 가축수송과 더불어 승선인원의 생존률을 나락으로 떨어트렸음. 이전에도 일본 선단은 병력수송을 함에 있어 평균적으로 1평(3.3제곱미터)당 4명을 태우는 수준의 빡빡한 가축수송을 일삼아 왔고, 니킨 마루 격침 이전에도 가축수송의 폐해로 병력수송선 1척당 1천명 이상의 사망자들이 발생하는 기록은 많았음.

(1944년 4월 17일 – 1944년 5월 9일간 있었던 타케-1선단의 항로. 타케-1 선단은 가토급 잠수함 잭-SS-259-, 거나드-SS-254-의 공격으로 인해 수송선 4척이 침몰하고 3,27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음.)

하지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선단 운항을 중단하던 1945년 3~5월경 전까지도 가축수송은 지속적으로 행해져 왔는데, 본래 병력수송선 자체가 부족해서 연합군처럼 중대~대대 단위로 분리해서 수송선에 승선시켜 병력수송을 하는 여유를 부리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크며, 단일 수송으로 가장 병력수송량이 높기도 했던 것과 소폭이긴 하다만 인명경시적 사상 역시도 어느정도 들어갔다고 평할 수 있음.



니킨 마루 격침 기록은 인류 해사 사상 손꼽히는 대참사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음.



자료참조

리처드 H. 오케인 자서전 - Clear the Bridge!
SS-306 USS Tang War Patrol Report
전사총서중국방면해군작전
전일본상선연합회







주1) 탱의 기록에서 흘수 관련으로 약간 의문이 들 수도 있을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흘수 관련이라면 사실 사람이라는 '화물' 그 자체는 중량물이 그리 무거운 것이 아님. 평균적으로 1인당 70kg이라고 쳐도, 225톤 가량을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할 정도이기에 개인장구류나 식량 등 기타 장비들을 다 싣는다 하더라도 흘수가 낮은 것은 이해 못할 사안은 아님. 거기에 악기상 상황이었으니 일시적으로 흘수가 낮아지거나 혹은 깊어지는 현상 역시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고.

- there is no room for mistakes in submarines, you are either alive or d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