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여 개의 섬들로 이뤄진 필리핀은 반일 레지스탕스들이 활약하기 실로 이상적인 지형이었으며,

중국을 제외한다면 태평양 전쟁 기간 일본에 점령당한 그 어떤 아시아 지역보다도 많은 국민들이

필리핀 해방을 위한 투쟁에 동참했다.

섬 전역에서 게릴라들이 조직된 배경에는 1946년 이후 완전 독립을 약속한 미국에 대한 기대감과,

고문과 공개 참수를 일삼았던 잔인하고 오만한 좆본군에 대한 증오가 있었다.

게릴라 부대 중 일부는, 1942년에 항복하는 대신 정글 속으로 도주했던 미군 장교들이 이끌었다.

많은 필리핀군들이 항복하기 전에 무기를 숨겨두었기에, 게릴라들이 비교적 쉽게 무장을 갖출 수 있었다.

호주 브리즈번의 맥아더의 사령부에서 필리핀 저항군의 규모가 상상 이상임을 확인한 뒤에는,

무기와 무전기, 의약품들이 미 해군 잠수함을 통해 필리핀으로 잔뜩 실려왔다.

화물 중에는 심지어 "나는 여러분에게 돌아갈 것입니다."라는

대통령 선거 출마 유세를 연상시키는, 맥아더 개인의 선전 팜플렛도 있었다.

일본군이 병력을 보낼 여유가 없는 정글 지역에서는 지역 게릴라들이 시민들의 치안을 유지하고,

심지어 임시 지폐를 발행하기도 했는데, 애국뽕을 감안하더라도 이 임시 지폐는

적어도 일본군표 같은 휴지조각보다는 환영을 받았다.

해안에서는 어부나 하릴없는 백수건달인 체하는 게릴라 요원들이 일본 선박에 대한 정보를

무선으로 보고하여, 미군 잠수함들이 필리핀해에서 푸짐한 잔칫상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왔다.

게릴라 활동이 일본군을 자극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모른다는 현지인들의 비난을 살 걱정은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게릴라에 참가하지 않은 현지인들도 미군이 상륙하자 앞다투어 크고 무거운 장비를 나르는 일을 도왔다.

심지어 마닐라에서 겉으론 일본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는 듯했던 괴뢰정부의 "친일파"들도,

실상은 뒷구멍으로 최대한 많은 정보를 빼돌려 레지스탕스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일본군의 보복은 맥아더의 미군이 상륙하고 나서 마닐라 탈환전을 벌일 때 특히 두드러졌다.

자기들이 그 동안 미군 포로들에게 한 짓이 있었기에 항복해도 자비를 기대할 수 없었던 일본군 육군과 해군육전대는

"이왕 죽는 김에" 최대한 많은 마닐라의 민간인 여성들을 강간하고 죽였다.

민간인의 희생을 최소화하고자 맥아더가 마닐라 탈환전에서 폭격기를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마닐라 인구의 1/8에 달하는 10만의 민간인들이 죽었다.


- 앤터니 비버 "제 2차 세계대전"中





2차대전에서만큼은 킹리핀이다

연합군(쑻)이 아니라 연합군(엄격, 진지, 근엄)이었던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