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국왕 압둘 아지즈(Abdul Aziz)가 루즈벨트 대통령과의 회담을 마친 뒤  고작며칠 후 인 2월 17일,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국왕은 루즈벨트가 했던 조언대로 일단 처칠을 만나보기로 한 것이다.


미국과 사우디의 회동 소식을 전해들은 처칠은 전후 영국의 중동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이 회담을 요청했다.













영국 측은 군함 위에서 회동했던 미국과 다르게 대영제국의 품격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들은 파이윰 호수(Fayoum Lake)에 있는 특급호텔 오베르주 뒤 라크(Auberge du Lac hotel) 전체를 빌렸다. 이집트 고관대작들이나 영국 귀족들이 주로 묵는 곳이었다.


그리고 미국이 국왕을 고작 구축함에 모셔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아레투사급 경순양함 4번함 오로라(HMS Aurora)를 보내어 회담 기간은 물론이고 제다로 돌아갈 때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처칠의 의도는 생각대로 통하지 않았다.


국왕은 머피 호에서 그랬던 것처럼 천막을 치고자했으나 영국인들은 계속 스위트룸에 투숙할 것을 권유했다. 수행원들은 국왕이 꽉 막힌 건물 안을 싫어한다고 설명했지만 영국 정부와 호텔측은 난색을 표했다. 











처칠의 태도 역시 국왕의 심기를 건드렸다. 온화하지만 직설적인 화법으로 듣는 사람을 존중해줬던 루즈벨트와 달리, 처칠은 박력은 있었지만 무언가 숨기는 듯 빙빙 돌려말했다. 나중에 국왕은 삼남인 파이살에게 '총리는 교활한 면이 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처칠은 국왕이 이슬람교도에 비흡연자라는 정보를 들었음에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시가와 알코올을 숨기지 않았다.  국왕은 처칠이 연기를 내뿜고 잔을 들어올릴 때마다 불편한 기색을 표했다. 처칠은 한술 더 떠서 '당신들에게 금주가 종교적 신념이라면 내게는 흡연과 음주가 신성한 의식이다'라고 자기합리화적 발언도 했다. 국왕은 애써 웃으며 동의했다. 영국 측 기록에 의하면, 시가는 양해를 구하며 딱 2대만 피웠고 위스키 대신 색깔 있는 컵에다가 샴페인만 마시는등 그래도 어느정도 절제는 했다고 전해진다.


(주: 이건 심지어 처칠 전기에서 본인이 직접 언급한 발언이다.) 

 








회담의 주요 주제는 팔레스타인 문제였다. 앞서 루즈벨트에게 했던대로, 국왕은 유대인들의 정착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벨푸어 선언을 토대로 하는 영국인들의 정책은 좀처럼 타협을 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석유만 캐갔던 미국과 달리 영국은 사우디 건국 이전부터 이집트, 이란, 이라크, 요르단, 쿠웨이트, 오만, 예멘등 사방에서 그들을 압박 해오던 가상적국이었다. 국왕이 느끼기에 영국은 지는 해였고 허세만이 가득했다. 결국 회담은 좀처럼 타협안을 찾지 못한 채 끝났다. 


다만 국왕은 처칠이 젊은 시절 자신과 같은 군인이었고 나치독일에 맞서 국민들을 이끌고 전쟁을 승리로 인도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국왕은 처칠에게도 선물을 준비했다. 루즈벨트에게 준 것과 같은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단검과 벨트, 처칠의 딸을 위한 고급가죽으로 만들어진 여행가방, 그리고 성지 메카의 신성한 우물에서 떠온 물 한잔이었다.처칠은 이 물을 마셔보고선 '여태까지 마신 물중 제일 맛이 좋다'고 평했다.


처칠도 국왕에게 선물을 하나 전달했는데 고급 향수병이었다. 며칠 전 비서에게 100파운드를 쥐여주고 카이로 시장에서 사온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국왕의 선물에 비하면 궁색한 면이 없지 않았다. 처칠을 그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가져온 것은 작은 선물일 뿐입니다. 조만간 폐하를 위한 특별한 선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HMS 오로라를 타고 돌아가는 국왕의 귀향길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배는 USS 머피 호에 비해 크고 넓었지만, 영국인들은 안전상 문제를 들어서 선수에 천막 치는 것을 허가 해주지 않았다. 국왕은 영국 음식은 입에 대지 않았다. 영국 수병들은 깎듯하게 예의를 지켰지만 미국인 같은 격 없는 인간미가 없었다. 국왕은 항해 내내 '미국인들의 작은 배가 더 좋았다'며 중얼거렸다.' 









1년 뒤인 1946년, 영국군 수송기가 리야드 궁전 앞에 커다란 화물을 하나 내려놓았다. 처칠이 약속했던 특별한 선물이었다. 바로 롤스로이스 팬텀 III (Phantom III All-Weather)이었다. 그야말로 영국 장인정신과 기술력의 정수가 들어간 마스터피스였다. 하지만 국왕은 롤스로이스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차를 타보려던 국왕은 오른쪽 조수석에 운전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가치관 상 운전대는 하인이 잡는 것이었다.


(주: 압둘 아지즈 국왕은 자동차를 탈때면 뒷자석이 아니라 항상 선탑을 했다.)



국왕은 이내 천막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리고 처칠이 준 롤스로이스는 단 한번도 운행되지 않고 리야드 궁전 박물관으로 직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