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참가

오페르트는 1866년 조선에 두 차례의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거절당하자 1868년 4월 모험가 젠킨스(Jenkins), 프랑스 선교사 페롱(Feron) 등 100여 명과 차이나호를 타고 조선으로 들어왔다. 


병인양요 당시 길안내

리델신부는 당시 프랑스 함대의 길안내를 맡았음



1890~1933년 까지 가톨릭 조선 교구장 이었던 뮈텔의 일화

안중근 고해성사 거절

1910년 2월 16일

오늘 저녁 5시 경에 여순 재판소 일본 검사로부터 사형수 안중근과 니콜라 빌렘 신부의 면회를 허락한다는 공문을 받았다. 이에 면회를 허락해 주어 감사하지만 여순으로 어떤 신부도 보낼 수 없다 답하였다.

1910년 3월 28일

토마스의 사형 집행이 26일에 있었다. 일본인들은 그 시신을 유족에게 넘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안명근 밀고

안중근의 사촌이자 독립운동가 였던 안명근이 신부에게 데라우치 암살 계획을 고해성사 하자 총독부에 헐레벌떡 뛰어가서 밀고

3.1운동 당시 반응

“그들은 나를 붙잡고 나라가 이렇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울기도 하고 발을 구르기도 하고 정말로 무서운 모습이었다. 마침내 그들에게 질서를 지키도록 간청했고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차라리 신학교를 떠나라고 했다.”

다른 신부 반응

샤르즈뵈프 신부는 그의 권위가 무시된 것을 보고 의기소침해 있다.신부들을 포함해 전 신학생을 체육실에 집합하도록 지시하고, 교리 강의 때문에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 신학교로 갔다. 그들을 앉히지 않고 나는 그들에게 "순명하지 않는 신학교를 원치 않는다. 신학생들과 상관 없는 정치적 소요 같은 행동이 일어난다면, 유죄/무죄를 불문하고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신학교 문을 닫겠다."고 냉혹하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 후 교리 강의를 하러 갔는데, 거기에 경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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