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면포 2필이라고 하면 현대인들한테 감이 안오는 거시야..
조선 후기 군포의 부담은 면포 1필에 대하여 쌀로 내면 6말에 해당되고, 조는 8말에 해당되며, 콩은 12말에 해당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2냥으로 당시 전세(田稅)의 3배에 해당하였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6725
라고 하긴 하는데. 전세가 대충 20분지 1이었던가..
1년에 면포 2필이라고 하면 현대인들한테 감이 안오는 거시야..
이게좀 골때리는게 무슨천으로 내는지 남부인지 북부인지에 따라 부담이달라짐
목화 재배가능한 남부면 모르겠는데 불개능한 중부위쪽이면 으헤헤헤헤헤
이십분지삼 정도면 연봉 천당 백오십 정도
그리고 토지 결당 수확량도 지역따라 편차가 커서 부담이 달라짐
옷을 지어 입으려면 당연히 면포가 전국적으로 유통이 되어야 했을테니 지역은 별 문제가 아니었을거 같고. 아니면 면포 시세에 해당하는 물품이나 돈으로 내던가 했겠지. 면포는 기준품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