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찬가지로 인근 빈농 집안의 딸 밖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안나는 어릴때부터 줄곧 함께 지내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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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뒤 나는 가산을 정리해 도시로 이주할
계획에 착수 했다. 어릴때부터 도시에서의 생활은 나의 꿈이었고
반드시 이루어야 할 소망이었다. 이제는 안나도 함께였고
그녀의 부모와 다투긴 했지만 우리의 미래를 막을 순 없었다.
결국 우리는 얼마 안가 동프로이센의 도시로 이주했다.
그때 나는 스물세살의 젊음이었고, 안나의 뱃속에는
첫째 아이 토마스가 자라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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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공장노동을 거듭하며 어느덧 도시생활에 대한
환상은 깨져 가고만 있었다. 고향의 밀밭과 숲의 풍경이
그리울 때면 나는 애써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의 감정을 외면했다.
그 와중에 토마스는 막 걸음마를 시작했으며 전쟁이 터진것도
그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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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살이 되는 해, 징집당하기 얼마전에서야 안나가
둘째 아이 로라를 임신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나는 아내와
두 아이를 남겨두고 전쟁터로 나가야만 하는 가장이었다.
그저 무사히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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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 속에서의 생활은 지독히 괴로웠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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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신이 거의 불구가 된채 집에 돌아왔을때 우리의 보금자리
단칸방에 먹을 것이라고는 쥐새끼 똥조차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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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도 보도 못한 불경기였다. 패전의 여파였겠지만 너무도 심각했다.
차라리 철없던 시절 도시에 대한 환상 따위에 빠지지 않고
고향의 소작이라도 물려 받았다면 이렇게 굶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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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름시름 앓던 안나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죄책감이 온몸을 휘감으며 나는 현실을 저주했다.
나의 두 아이, 토마스와 로라는 못난 아버지를 둔 덕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온갖 노동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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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끔찍한 전쟁이 끝난지 고작 20여년 밖에 되지 않았건만
또다시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전쟁이 터지고 토마스가 군대에 징집 당했을 때,
아들은 내가 징집됐던 나이와 같은 스물다섯살 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전쟁이 본격적으로 커지자
로라는 군수공장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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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괴로웠던 참호속의 전투에서, 비록 불구가 되긴 했지만
살아 돌아왔으나 아들은 그러지 못했다. 뼈가 사무치는 혹독한
추위의 러시아 전선에서, 아들은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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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이 동프로이센에 진주하기 시작했을때 까지도
로라는 군수공장에서 노동중이었다. 공장이 소련군에게
접수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로라의 소식을
알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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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 난 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동프로이센은 소련과 폴란드에게 분할 할양 되었고
독일인들은 강제 추방당했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웃 사람들의 배려와 정부의 얼마 안되는 배급으로
나는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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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아들과 딸을 죽게 한, 소련군이 미웠고
공산당의 지배는 증오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동독 전역에서 반공시위가 일어 났을때, 비록 장애를 가진 몸이지만
나도 빠질 수는 없었다.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의, 나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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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의 꼬리표는 장애인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모진 심문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몸도 정신도 모조리 지쳐있었다.
더이상 살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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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뒤돌아보며 이제 마감의 시간이 왔을 때, 말 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세상의 끝이 이처럼...고요하고 평온할 수 있다는 것이....
아아, 그래.... 이제 사랑하는 안나와 토마스, 로라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한 인간의 한 일생을 다루려면 대하소설급 스케일이 되기 딱 좋아서... 파우스트 쓰는 심정으로 달라붙어야 할걸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