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알아보려면 일단 1945년 낙지가 항복한뒤
미국,소련,영국,프랑스는 독일을 나눠버림 하지만
미국,소련,프랑스는 서독(독일연방공화국)을 합치고
소련은 동독(독일민주공화국)에 공산주의 정부를 세움
아무튼 역사이런건 넘기고 1961년 긴장감이 흐르는
대치상황이 이어짐
체코포인트 찰리
사건이 일어난 이유를 알려면 먼저 이곳을 알아봐야함
이곳은 서베를린 동베를린의 중간경계에 위치한
미군과 소련군의 공동 검문소임 우리나라로 치면
판문점임
미군의 M48전차와 소련의 T54전차
경계를 서고 있는 미군
대치상황
아사건이 왜일어났냐면 사건의 발달은
1961년 10월 배를린 장벽 건설 2개월후
미국의 외교관은 동독의 오페라를 보기위해
동베를린으로 갈려고 했는데 갑자기 동독군이
여권을 제시하라고 요구해버림 이게 사건의 발달임
그래서 미군이 권리를 주장하여 체크포인트 조사를
위해서 갑자기 외교관 알버트 헴싱을 보내버림
또 갑자기 체크포인트를 넘어서 동베를린을 갈려고
했는데 동독군이 여권과 신원을 요구해 자존심강한
미군은 군경을 파견해 헴싱의 차량과 헴싱을 엄호하여
통과함 며칠후 헴싱은 또 다시 시도를 함
결국 서베를린 주독미군 사령관 루시우스 클레이장군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M48전차 10대를 배치해버림
이는 결국 소련을 자극하는 꼴이 되었고 소련은 위험을
느껴 T54A전차를 배치함 소련은 총 33대의 전차를 배치
해버림 이후 서로의 전차를 서로 확인하자 소련도 23대의
전차를 철수시키고 10대만 남김 60~80m거리에서
서로 17시간 이상 대치하다가 결국 흐루쇼프와 케네디
는 소련 공작원 볼샤코프를 통해 전차철수를 합의 하고
소련군 전차다 5M를 후진하면 M48전차도 5M를 후진하면서 그렇게 서로 철수함
서로 자존심 싸움하는게 대국들 치고 쪼잔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