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경술국치로 대한제국군은 소멸했지만,


일본의 조선주차군 사령부로 일부 이동했고 대한제국군 시절의 계급명을 유지했다.


그래서 이 시절엔 독립군에서도 참위, 부위 같은 표현을 쓰고


일본군에도 구 한국군 출신들이 참위, 부위를 썼다.


1920년에 소위, 소좌 같은 일본식 표현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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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소장의 영친왕 사진이다. 1911년이나 1912년 정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크햇 쓴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고(아마 고희경?),


영친왕 뒤의 장성은 동궁무관장인 조동윤(부장)이다.


제일 좌측은 동궁무관인 김응선(참령)이다.


둘다 친일파 명단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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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사진.


짬 안 되는 김응선은 서 있고, 조동윤은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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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사진.


김응선은 좌측에, 조동윤은 영친왕의 뒤에 있다.


어른들이 다 받들어줄 테니 10대의 영친왕은 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일본은 영친왕을 볼모로 데려가서 군사학교에 넣었는데,


일본의 평민들과 군사 훈련 받는 영상을 받아 보고 모친인 엄귀비가 충격을 받고 쓰러져 죽었단 설이 있다.


그 시대에 영상을 보내줬다는 게 더 놀랍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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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을 입은 조동윤(영친왕 왼쪽)과 영친왕


오른쪽 끝의 김응선은 군복을 입고 있다. 


왜 조동윤은 정장을 입고 김응선은 군복을 입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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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원 앞에서 찍은 사진.


조동윤이 크고 김응선의 키가 작은 편인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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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일본 육사 15기 유학생 8명 사진에서 김응선(최좌측 인물)이 가장 작다.


이 사진 속에서 유동열(왼쪽 2번째 군복 남성), 이갑(가장 오른쪽 군복 남성)을 제외한 6명은 대체로 친일 테크를 탔다.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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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일본 왕실의 사진.


히로히토 옆에 장성한 아키히토(지금 나루히토의 아버지)가 앉아 있는 점에서 1950년대 정도로 보인다.


와이프가 없는 거 보니 아직 장가 가기 전이다. 


영친왕은 아키히토 바로 뒤에 서 있어서 알아볼 수 있다.


(아키히토의 표정을 보니 가족모임이 약간 불편해 보인다)


이 시기엔 일본의 백업용 방계 왕족들이 다 평민으로 강등당한 뒤라서 사실 몇 명 빼고는 다 평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