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를 하려면 설악산 대청봉을 올라 정상으로만 후퇴하여야 하는데 또 다시 폭설과
바람 그리고 무릎까지 채이는 눈덩이를 뚫고 후퇴가 불가능해서 그 날은 중청봉과 대 청봉 사이에서 야숙.
너무 배가고파 전우 5명 단위로 양말 속에 마지막 비상쌀을 털어, 나뭇가지에 전화 선으로 마찰 점화시켜 밥을 지어 먹었다.
다음 날 마등령에서 남침하는 수만 명의 공산군을 뒤로 하고 우리는 대청봉에 오르 는데 쏟아지는 눈과 바람으로 앞이 보이지 않고 무릎까지 빠져드는 걸음에는 막막할 뿐이었다. 그 날은 대청봉에서 야숙하였고 건빵 넣은 양말에서 반을 꺼내서 저녁으로 먹었다.

6일째 되던 날. 눈은 끝나고 맑은 태양 을 보니 남은 전우는 네 명 뿐이었다. 설 악산, 오대산, 대관령을 지나 구산리에 도착하니 집이라고는 초가 한 채. 먹을 것은 없었다. 간장 항아리에 간장이 있 어 간장을 퍼먹고 배가 아프다고 뒹굴 다가 세 명이 죽었다. 혼자 남은 나는 그 날 밤 죽은 전우의 손을 잡고 밤새 울었 다.

그 후 천운으로 구출되어 강릉 59육군병원에 입원, 링거 꼽고 3일 후에 깨어났다. 변
을 9일이나 보지 못하였는데 그 후 계속 피와 섞여 나와 죽는 줄 알았다.
몸을 추슬러 다시 15일 만에 원대복귀하였다.
나는 지금도 후유증으로 차가운 물을 먹지 못하고 더운물만 먹으면서 지금까지 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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