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서 전차 활약 목도한 채피
전차 부대·기갑 병과 필요성 주장
기·보병 장교들, 배신자라 맹비난
2차대전서 독일군 전차 유럽 돌진
미 전쟁부, 서둘러 기갑 병과 창설
독일 상대할 수준까지 전력 확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로 진격해 들어간 M24 ‘채피’. |
9월부터 매주 화요일 ‘미 육군개혁 이야기’를 새롭게 연재합니다. 많은 어려움과 극복을 통해 세계 최강의 육군으로 거듭난 미 육군의 개혁 과정을 소개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살아서 비난 받던 ‘미 전차 부대의 아버지’
미 육군교육사령관을 지낸 돈 스태리(Donn A. Starry, 1925∼2011) 장군은 “거대한 육군 조직을 변화시키려면 ‘선각자의 외로운 싸움’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선각자의 외로운 싸움’이란 무엇일까? ‘미 전차 부대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드나 채피 주니어(Adna R. Chaffee Jr.) 장군의 사례가 이를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일 듯하다.
미 육사 홈페이지의 애드나 채피 주니어(이하 애드나 채피) 인물평에는 “육군에서 큰 존경을 받는 기병이자 탁월한 지적 능력을 지닌 장교였다”고 써 있다. 그러나 살아생전 애드나 채피는 칭송보다 비난을 많이 받았다.
컬러로 복원한 애드나 채피 장군의 사진. |
미 기병, ‘말이냐 전차냐’ 선택 기로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 기병 장교들은 ‘말이냐 전차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들은 “말이 전차보다 기동력과 순발력이 우수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병을 지원하는 보조 수단으로 전차 운용을 제한하려 했다. 그러나 전차의 활약을 목도했던 애드나 채피 대위는 “전차가 미래전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채피는 육군총참모부 작전부에 들어가 전차 부대 창설을 기획했다. 야전으로 나와서는 신편 제1기계화기병연대 초대 지휘관을 맡았다. 기병 병과 실력자들은 ‘기계 뒤에 숨는 겁쟁이’, ‘미 육군 기병의 배신자’라고 채피를 비난했다.
1930년대 중반, 전차의 가능성을 확신한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 등은 전차 부대를 늘렸고 대규모 기동 훈련까지 마쳤다. 그러나 미국은 전차 부대 통제권을 두고 보병과 기병이 싸우느라 전차 생산을 위한 예산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이를 본 채피 중령은 야전 근무를 마치자마자 육군총참모부 예산편성과로 갔다. 전차 부대에 필요한 제도·예산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전술 연구와 교리 작성도 직접 했다. 이제는 보병 장교들도 채피를 비난했다. 그가 ‘보병으로부터 독립된 기갑 병과 창설’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애드나 채피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원소속인 기병을 배신하고 고위층에 충성하는 장교’라는 헛소문이 육군 내에 돌았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1939년 8월, 독일군 전차가 일제히 폴란드군의 방어선을 뚫었다. 1940년 5월, 독일군 기갑 사단은 완숙한 솜씨로 프랑스군을 나누고 쪼개고 무너뜨렸다. 유럽 전장 상황을 미국으로 타전한 전보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전차, 공격, 기동’이었다.
1930년대의 미 육군 기병대. 이들은 마지막까지 조직적으로 독립 기갑 병과 창설에 반대했다. 필자 제공 |
기병 출신 장군, 초대 기갑군 사령관이 되다
독일군이 2700여 대의 전차로 유럽을 휘젓고 있을 때, 미군이 가진 것은 라이선스 생산한 100여 대의 경전차가 전부였다. 미 전쟁부(War Department)는 급히 장군이 된 채피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곧 ‘기갑 병과 창설 명령(1940년 7월 10일부)’이 공식 하달됐다. 채피 장군은 초대 기갑군(Armored Force) 사령관이 돼 기갑 전력 확충에 매진했다. 미국이 참전한 1941년 12월, 미군이 독일군을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기갑 전력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애드나 채피가 일생을 전차에 바친 덕택이었다(그러나 채피 장군은 미 전차 부대의 활약상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성을 딴 전차 M24 ‘채피’도 못 봤다. 영관 장교 때부터 악화된 건강은 회복되지 않았고,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기 전인 1941년 8월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돈 스태리 장군은 1983년 미 ‘군사논단(Military Review)’에 다음과 같은 요지로 혁신의 어려움과 ‘선각자의 외로운 싸움’에 대해 썼다.
군대는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변화를 실천하는 사람은 조직적인 저주, 혐오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육군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변화시키려면 ‘선각자의 외로운 싸움’을 피할 수 없다.
혁신을 주도할 만한 역량이 있고 손가락질 받을 각오가 되어 있는 자라 할지라도, 소속된 조직의 집단적 저주나 혐오를 견디긴 힘들 것이다. 무슨 말을 더할 수 있겠는가? 지금도 전후방 각지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 선후배 동료들에게 지면을 통해 신뢰와 응원을 보낼 뿐이다.
<남보람 육군소령>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bbs_id=BBSMSTR_000000001264&ntt_writ_date=20180904&parent_no=1
채피새끼만 없었으면 미군기병발도돌격 볼 수 있었는데 개새끼
역시 선각자는 힘든것이지 - GOD AR
이런 분이있었기 마련이죠 누가 말을 차량이 대체하고 전차가 40톤까지 무거워질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리고 공격헬기가 나올지 어떻게 알았구요
진짜 앞서간 사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