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 근처가 농사가 될거같냐?
농사가 안되니까 툭하면 약탈이나 쳐하고 그러고 살음
반농반목 했다고는 하는데 사실 대부분아 목축업에 가까움
사실상 백정이나 강도 도둑놈들임
고구려 문화재보면 답이 딱 나오잖아
참 투박하고 좆같이도 생겼네라는..
문화라는건 여유가있을때 나오는거야
그만큼 고구려는 곡창지대도없이 문화적 여유라는게없다보니까
맨날 그딴 투박한 싸구려 장신구나 쳐만들지
마치 지금의 북한같다랄까
괜히 남진해서 평양먹고 한성 공략한게아니야
거기가 사실상 노른자위 땅이니까
배고픔을 달래줄수있는 그런땅이라 남진한것임
어느 시절 약탈경제론이냐….
나도 이렇게 알고있었는데 아님?
@NEOSPIN 고구려도 농사 지을 거 다 짓고 교역할 거 다 했음. 다만 위치상 조, 기장, 메밀 같이 지금 기준에선 잡곡 취급 받는 곡물이 주였기 때문에 농업의 부양 능력에 한계가 명확했음.
고구려가 극초기에 약탈의 비중이 상당히 컸고 국가 기틀 잡힌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약탈 문화 남아있던건 사실임
@H-Station 고구려가 완전히 농경 기반으로 전환된건 태조왕이 국가기틀 다지고 주변 소국들 상당수 흡수한 후
@ㅇㅇ(61.81) 그거랑 별개로 글내용은 걍 헛소리긴함 장수왕 남진정책은 이미 북부 먹을만한곳은 대부분 막고 남은게 남쪽이었으니 그런거지
@ㅇㅇ(61.81) 고구려가 완전히 농경기반이 된건 남진정책 이후야 그쪽지역은 지금도 농경이 어려워 그런데 ㅆㅂ 그때 무슨기술로 농경기반으로 정책이 바뀌냐? 말이되는 소리를 해
@ㅇㅇ(61.81) 고구려는 옥저의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까지하면서 축제를 열었어 옥저가 농사가 잘되어야 약탈물도 많아지니까 그런나라야 그런데 무슨 ㅆㅂ 농경같은소리하네
@ㅇㅇ(1.230) 그리고 그 동옥저는 이미 태조왕때 고구려에 복속되었고 ㅇ 그리고 농경기술? 그때 부족했지 근데 그래서 오히려 벼농사 되는 지역이랑 안되는 지역의 생산량 차이가 적었음 ㅇㅇ 그리고 그시절 한반도 농경은 어차피 개간/저수 기술이 미발달되었어서 어차피 골짜기와 구릉지에서 농사짓던 시절임
@ㅇㅇ(1.230) 즉 고구려가 농사가 안된다는거 자체가 니 뇌피셜이란거임 당장 고그려에서 약탈로 먹고살던 전사층인 좌식자도 태조왕 이후로 기록에서 사라짐 ㅇㅇ
@ㅇㅇ(1.230) 앞에 내용 좀 잘렸는데 고대시절엔 지구 자체가 온난기라 북부에서도 이후에 비해 농사지을만했음 ㅇ 괜히 부여니 뭐니 하는 국가들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던게 아님
@ㅇㅇ(61.81) 그렇게 따듯하고 농사가 잘되는데 ㅆㅂ 온돌이 발달하냐?
@ㅇㅇ(1.230) 이후에 비해서ㅜ지구적 단위로 좀 더 온난하고 그래도 벼농사는 잘 안되지만 어차피 벼농사 기술도 발달못한 시절이라 오곡이랑 생산량면에서 엄청난 차이까진 안났다니까?
@ㅇㅇ(1.230) 난독임? 어케 저걸 읽고 따뜻하고 농사가 잘되었다는 소리를 하지 ㅋㅋ
@ㅇㅇ(1.230) 구들이 발달했단 말은 다르게 말하면 항구적인 정주 생활을 했단 증거임.
@ㅇㅇ(1.230) 지금 기술로도 농경이 어렵다는건 뭔 북만주 송화강 일대는 유목민 들어와서 개판나버리기 전까지 천년 넘게 농사 잘만 짓던 지역이고 남만주는 농사기술 ㅈ도 없던 여진족들조차 산맥 사이사이에서 약간의 농사는 짓던 지역이고 함흥평야나 요동은 걍 대놓고 곡창지대인데
@ㅇㅇ 함흥평야는 옥저땅이었어
@ㅇㅇ 송화강 일대는 쌀농사를 지어본적이 없는곳이야 중국애들 거기서 옥수수키워
여진이랑 비슷하다고 보면되나?
여진보단 낫지 사실상 그새끼들은 유목에 가까운데..
여진이 말갈이라 그땐 고구려랑 한나라 아님?
곡창지대가 없다 > 농사가 안된다는 이상한 논리 같은데 나일강이나 메소포타미아, 황하 같은 천혜의 조건이 이니고서야 인류 농사의 시작은 대부분 산골 구릉에서 이루어졌음
평야 농업이라고 하는 것도 대부분 강 바로 옆에서나 할 수 있던 수준이지 대규모 평야 농업이 가능해진건 대규모 치수 기술이 개발된 이후임 고려때에도 농사 거의 반이 구릉지에서 이루어짐
장수왕께 물어보고싶다
장애인 틀딱 놓고 그만 패라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