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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에선 만주 지역 자체를 백업 영토로 생각해서 비워 두었다.


하지만 한반도에선 지리적으로 가깝다 보니 몰래 몰래 다녀오는 일이 잦았고,


1860년에 연해주가 러시아령이 되면서


러시아 입장에선 청나라 사람이 아니라 영토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한인들의 이민을 허용해줬다.


원래 관북 지역의 사람들은


유럽에서 데려온 러시아 백인들 보다 이지역 이해력도 높은 편이니 말이다.


1860년대부터 이민이 시작됐으니


1890년대가 되면 러시아에서 나고 자란 2세대들이 이미 성인이었다.



전부터 러시아 교관이 훈련시킨 병사로 요사이 왕궁호위를 위한 1개 부대를 조직해서 시위대(侍衛隊)로 명명하고 지난달 26일 발표하였습니다. 이 대대는 5중대로 편제하고 대대장에 참령(參領) 1명, 향관(餉官)에 1·2·3등의 군사(軍司) 중 2명, 부관(副官)에 부위(副尉) 2명, 기관(旗官)에 참위(參尉) 각 1명, 중대장에 정위(正尉) 5명, 소대장에 부참위(副參尉) 20명, 정교(正校) 5명, 부참교(副參校) 70명, 기졸(旗卒) 5명, 병졸 9백명을 두고, 곡호대(曲號隊)(음악대를 말함)에 부교(副校) 1명, 곡호수(曲號手) 5명, 고수(鼓手) 10명, 양마소(養馬所)에 양마병(養馬兵) 4명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사관(士官)을 임명하고 사관 30명 중 러시아식 훈련을 받은 사관생도 17명, 기타 과반은 러시아어 통역 또는 함경도 출신자로 이를 충당했습니다. 이를 구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참령 장기렴(張基濂)·부관 홍병진(洪秉晋)·기관 李東暉(李東暉)(함경도인 병사는 함(咸)으로 표기함), 일등군사 정태석(鄭泰奭)·동(同) 신창희(申昌凞), 정위 조복희(趙復凞)·동 이석훈(李錫薰)·동 전우기(全佑基)·동 김용삼(金龍三)(함·통역)·동 조성원(趙聖遠)(동상(同上))·부위 이인팔(李寅八)(동상)·동 조봉득(趙奉得)(동상)·동 김흥린(金興磷)·동 이계희(李啓喜)(함. 이하 17명은 러시아식 훈련을 받은 생도) ·동 사전흡(舍全洽)·동 이수봉(李守鳳)·동 박유태(朴有泰)(함)·동 김인수(金仁洙)(함·통역)·동 장경원(張駉遠)·동 이창근(李昌根)(함)·동 정춘원(鄭春元)(동상)·참위 김학수(金學洙)·동 최봉규(崔鳳奎)(함)·동 김병도(金炳道)(함·통역)·동 박규환(朴圭煥)·동 김성근(金盛根)(함)·동 최재익(崔在翊)(함·통역)·동 심상윤(沈相潤)·동 박흥엽(朴興燁)(함)·동 목영석(睦永錫)(동상)


<일본 공사관>의 문서 


그래서 러시아 군사 고문단이 왔을 때


러시아어 구사가 가능한 연해주 한인이나 연해주와 왕래가 잦았던 함경도 출신들을 시위대 창설 자원에 기용했다.


일본과는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언어 이해도를 서로 높이는 게 빠른데


러시아어랑은 거리가 워낙 멀다 보니 통역이 대단히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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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선군에겐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미 연무공원 시절에 영어로 훈련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중요하지만 구한말에는 "언어 능력"이 정말 중요했다.


핵심적인 데이터가 다 외국어였으니까.


이런 러시아계 군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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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가 있다.


러일내전 당시에 러시아로 넘어갔다. (원래부터 러시아인이었단 말도 있다)


러시아 내전 당시에 백군으로 가는 바람에 잊혔다.


임정과 딱히 관계가 있는 편도 아니라서.


러시아와 가까운 진위대 부대들 보면 1904년에 탈영해서 러시아군으로 합류한 장병 사례가 간혹 나온다. 


러시아 기병대가 와서 대대본부의 무기고를 털어간 일도 있다.


이 시기에 북부의 진위대 부대들은 통신과 물류가 끊긴 상태로 지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