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에 기공, 2년 후 완공되어 1907년에 일본군에 탈취당해 사라졌지만

실제로는 그 전신인 포공국/기기국 기기창과 계보가 이어지기 땜에 근대군수공장으로서의 실 역사는 1887~1907년임

그리고 기기창 역시 조선시대 군기시랑 계보가 이어짐.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에서 아뢰기를,

"기기국(機器局)을 이미 설치하였으니 일체 필요한 비용을 마련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각 관청의 각종 공납(貢納)에서 줄인 몫을 적당히 획부(劃付)해 주고, 총융청(摠戎廳)의 월과계(月課契)와 군기시(軍器寺)의 원래 공납(貢納)도 또한 해국(該局)에 이속(移屬)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전교하기를,

"기기국(機器局)이 이미 창설되었으니, 군기시(軍器寺)를 본국(本局)에 이부(移付)하여 모든 무기 등속을 전적으로 맡아서 제조하게 하라."

하였다.




군기시는 1392년 조선 건국 당시부터 창설되었던 조선의 관영 조병창임. 개경에서 창설되어 현 서울시청 부지 북쪽으로 옮겨옴

선조실록 기록에 따르면 1593년부터는 항왜 동원해다 조총 생산을 시작했음.

조선후기 들어서서는 민영군납업자랑 각 군영의 무기제조가 성장해서 그전만큼 중요한 위치는 아니었음.

그러다 개항 후 기기국 짓고 기기창이 완공되자 업무를 이관했음. 결국 조선군 5백년 역사를 함께한 조병창인 셈임.


현재 서울시청 지하에 발굴된 유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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