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고 자호의 그런 말에 답하듯 그날 저녁, 천호에게서 작은 선물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자호는 선물을 받아들고 호치가 누워있는 방을 찾았습니다.
방안은 여전히 어두웠습니다.
자호는 숨을 죽이며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호치의 조그마한 숨소리조차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선물상자 안에는 단지 꽃 한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천호님이 보고있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꽃이었습니다.
그 초라한 상자안을 보고 자호는 높이 치켜들어 바닥에 팽개치려다 힘없이 바닥으로 내려놓았습니다.
자호는 입술을 깨물며 붉어진 눈가를 손으로 가리었습니다.
[봐라, 이랬던 이에게 네가 그 정성을 들여 물건을 받쳤다.]
눈물이 나올 것을 참고, 금방이라도 꽃을 부셔버릴 것 같은 손으로 주먹을 쥐며 참았습니다.
[천호님이 네 이름조차 기억 못해 누구냐고 묻라. 그렇게 네가 선물을 보내고, 정성을 들였던 이였는데.]
가만히 누워있는 호치를 향해 말했습니다.
[가슴이 . . . 아팠다.]
그러나 호치는 자호의 말을 들을 수 없습니다.
[네 얘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 사실이 자호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네 욕을 하고, 너를 천시하고, 미움을 꾸며야하는 대상이 너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아팠단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천호님에게서 여우 구슬을 받아야 하니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천호님은 흥미를 보이며 구슬 주는 것을 미루고 미루었을 것이다.]
호치가 이 얘기에 상처받지는 않을테니까요.
[근데 이게 뭐냐, 달랑 꽃 한송이라니. 여우 구슬도 아닌, 그저 생명을 지킬정도의 힘이 담긴 꽃한송이라니. . . 차라리 내 힘을 줄 것을. . . 힘이 뒤틀리더라도 내 힘을 줄 것을. . . 차라리 그럴것을. . .]
하지만 호치의 근본은 자호가 아닙니다.
그 뿌리인 천호님에게 힘을 받는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자호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가슴에 상처를 하나하나 그어가며 말을 뱉었었지만, 천호님은 자호의 생각만큼 움직여주지 않았습니다.
자호는 상자에서 꽃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꽃잎 하나를 따 조심스럽게 호치의 입술에 갖다 대었습니다.
그러자 꽃잎은 작은 빛을 발하며 그대로 호치의 입 속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 호치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습니다.
[하아-]
자호는 다시 두번째 꽃잎을 따 호치의 입에 대었습니다.
꽃잎이 빛을 발하며 사라지고 호치가 움찔 손가락을 움직였습니다.
[인간이 무어라고. . .]
세번째 꽃잎이 호치의 입 안으로 사라지자 방 안에 옅은 바람이 불며 살짝 호치의 머리카락을 흩날렸습니다.
훨씬 생기가 돌아온 모습에 자호는 마지막 꽃잎을 뜯어 그대로 들고만 있습니다.
[돌아. . . 갈거냐. . . 눈을 뜨면, 넌 돌아가겠지. . .그 인간에게. . .]
아직 눈을 감고 있는 호치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습니다.
자호는 한참을 바라보기만 하다 마지막 남은 꽃잎 한장을 자신의 입술로 물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허리를 굽혀 호치의 입술에 주었습니다.
사락 소리를 내며 자호의 자홍빛 머리카락이 호치의 주위로 쏟아졌습니다.
자호는 호치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습니다.
작은 빛을 내며 꽃잎이 사라지고 자호의 입술로 마른 입술이 닿았습니다.
그리고 호치가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자호를 보았습니다.
별을 가진 작은 여우이야기 9
by 금보리
사내는 한숨을 쉬며 궐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색시가 궐 안으로 들어간 후 그로부터 일곱날이 지나있었습니다.
사내는 혹여 색시가 언제 나올지 몰라 궐의 높은 문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궐의 근처를 돌며 열매를 찾아 먹는다거나 가까이 오는 짐승을 잡는게 사내가 하는 일의 다였습니다.
그래도 사내는 배고프다 말 한마디 안하고 색시가 언제나올까 초조해 하지 않고
궐만을 바라보며 빌고 또 빌었습니다.
어서 색시가 나아서 건강한 모습으로 나오기를.
그거 하나만을 바라며 빌고 빌었습니다.
[천호님, 부디 우리 색시 살려주이소.]
호치는 멀리로 보이는 궐의 담을 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자, 자- 호치님. 어서 하이소. 아직 오늘 해야할 일이 쌓였단 말이오.]
[아, 네.]
까마귀가 사육장의 구린 분냄새가 올라오지 않는 지붕위에 앉아 호치를 서두르게 했습니다.
호치는 들고있는 괭이로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분을 긁어 모았습니다.
[아~ 이게 뭐꼬. 기껏 천호님이 명을 내려주셔 기뻐했더니 기껏해야 이런 냄새나는 일이었다니. 아이고 내 고운 옷에 냄새 배이네.]
까마귀의 엄살에 호치는 미안한 듯 웃으며 더욱 열심히 몸을 놀렸습니다.
그러나 큰 궐의 사육장이 작을 리 없지요.
호치의 주위를 감싸는 사육장의 크기는 이제껏 호치가 살았던 방보다 크고, 기방보다 컸습니다.
그래도 호치는 힘들다 한마디 안하고 열심이 청소했습니다.
그날, 호치가 처음 눈을 뜨고 자호를 보았습니다.
잘 생긴 얼굴에 키는 훤칠했고, 이제 어른이 되어 요력이 더욱 세어진 그는 정말 호치가 앞에 앉아있기도 힘들정도로 강건해져 있었습니다.
그 자색의 머리카락과 희미하게 느껴지는 자호의 향기가 아니었다면 호치는 정말 못 알아볼 뻔 했습니다.
냉랭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호를 보며 호치는 시선을 피해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여전히 자호는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아, 조금은 그것마저 반가웠습니다.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자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사내는 어디 있는지 궁금했지만 차마 자호에게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이런 반푼이도 못되는 것이!
호치는 다시 그 말을 듣게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자호님, 천호님의 명이...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얼마동안을 둘이서 말 없이 앉아있었을까요. 문 밖의 소리에 자호가 나가려 일어섰습니다.
[자호님- 호치님을 데릴러 왔소이다- 천호님이 데려오라시오-]
즐거운듯이 지껄이는 까마귀의 목소리에 호치는 문에서 멈춰서 있는 자호를 따라 나가려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천호님의 부름이라는 말에 호치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누워있던 몸이 그리 쉽게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힘없이 다리가 꺾여 이불 위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몸을 지탱하고 있는 팔조차 버거워하며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며 호치는 일어나려 바지락 대었습니다.
천호님의 명인데 늦게 가면 다시 미움받는거 아닐까 걱정되어 호치는 다시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런 호치를 자호가 안아 들었습니다.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는지 가볍게 안아올린 자호의 찌푸린 얼굴을 올려다본 호치는 눈가를 붉히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미안해요...]
토끼 두이토가 까마귀의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습니다.
까마귀는 호치를 안고 나오는 자호를 보며 눈을 가늘게 좁혔습니다.
[호오, 두 분이 그렇게 사이가 좋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이런.]
[천호님의 명이라니, 말하라.]
자호의 냉랭한 말에 까마귀를 흠칫 어깨를 떨더니 천연덕스럽게 말했습니다.
[천호님께서 호치님을 데려오라 하십니다. 무릇 길가의 벌레조차 은혜를 입으면 갚는 것이 당연지사.
너그러우신 천호님은 호치님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시기 위해 친히 호치님을 데려오라 명하셨습니다.
천호님이 힘을 내려 호치님을 살렸는데, 목숨은 내 놓지 못해도 뭔가는 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그렇습니까? 호치님.]
[...천호님이 ... 절 살리다니... 무슨?]
전혀 모르는 호치를 위해 까마귀가 검은 깃을 허공에 날려가며 설명했습니다.
[호치님의 몸에 여우구슬이 생기지 않아 목숨이 위험한 것을, 천호님이 친히 자신의 힘을 내려 살리지 않았소!
어디 천호님이 보통분이시오! 이 동랑산맥을 다스리는 꼬리 아홉달린 여우님이란 말이오!
한낱 자식이라고는 해도 그분의 은혜를 받다니, 이 얼마나 큰 광영이란 말이오!
너그러우신 천호님, 자상하신 천호님.]
[천호님이...날...]
호치는 너무 기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몇 번 본 적이 없는 천호님이었지만 역시 생각하고 있던데로 자상하신 분이라고, 호치는 생각했습니다.
그 예전 자신이 천호님께 바친 선물들이 어찌 되었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호치는 아직도 천호님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 말갛게 뺨을 붉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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